안 의사가 순국할 당시 형무소장의 딸인 이마이 후사코가 이 기록의 공백을 채워주는 듯했습니다. 당시 8살이었던 후사코는 안 의사 사형 집행날 상황을 증언합니다. 사람들이 관을 메고 감옥 뒷문으로 나와 뒷산 묘지로 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2장의 사진을 제공합니다. 1911년 뤼순감옥 뒤편 묘지에서 사형수 천도제를 지낸 뒤 찍은 사진인데, 안 의사의 매장 지점을 빨간 화살표로 표시해놨습니다. 후사코가 제공한 사진과 증언이 우리 정부의 2008년 유해발굴 조사의 결정적인 계기였습니다. 사진의 지형과 당시 지도 등을 비교해 매장 추정지를 특정했습니다. 그 지역은 뤼순감옥에서 북쪽으로 직선거리로 100m에 불과한 곳이었습니다.
뤼순감옥 공동묘지라고 불렸던 지역은 따로 있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둥산포' 즉 동쪽 산언덕이라고 불렀던 곳입니다. 뤼순감옥에서 동쪽으로 약 1.2km 거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지역은 1907년부터 1942년까지 뤼순감옥 공동묘지로 사용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안 의사가 순국할 당시에도 뤼순감옥 공동묘지로 사용됐던 셈입니다. 다롄시도 2001년 이 곳에 뤼순감옥구지묘지, 즉 뤼순감옥 옛 묘지터라는 비석을 설치했습니다. 2003년 뤼순일러감옥 실록엔 시체를 이곳에 묻거나 일본여순의학학교 시체저장실로 옮겨져 해부시험용으로 제공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즉 둥산포 지역이 뤼순감옥 재소자들의 공동묘지로 이용됐다는 사실이 증언이나 기록으로 남아 있다는 얘깁니다.
지난주 둥산포 묘지 현장을 방문했을 땐 늦여름이라 나무가 우거져 묘지 일대 전체를 한 번에 조감할 순 없었습니다. 그래도 수풀을 헤치고 들어가다 보면 뤼순감옥 옛 묘지터 비석은 여전히 그대로였고, 산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일반인들의 개인 묘지가 수두룩했습니다. 유해조사팀이 2008년 발굴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왜 엉뚱한 곳을 파고 있냐고 의아해했다는 증언도 있었다고 합니다. 발굴 당시 둥산포 묘지도 함께 조사했더라면 이런 아쉬움이 남지 않았을텐데라는 탄식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정부도 이젠 둥산포 묘지를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설사 안 의사 유해가 묻힌 객관적 사료 증거가 추가로 발견되지 않더라도, 더 이상 둥산포 묘지를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노릇입니다. 만약 안 의사 유해가 둥산포 묘지에 묻혀 있지 않다면, 상황은 훨씬 더 복잡해지고 유해 발굴은 더 암울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둥산포 묘지 지역은 문물 보호지역입니다. 중국 정부의 협조 없이는 발굴 조사를 진행하기 어렵다는 얘깁니다.
중국 정부는 2008년 발굴 실패 이후 확실한 문건 없이는 더 협조하기 어렵다는 입장으로 돌아섰습니다. 그나마 지금은 남북한이 합의에 의한 정확한 유해 매장지점을 특정하면 협조하겠다는 정도의 입장으로 좀 누그러졌습니다. 안 의사 유해발굴을 위해 중국 측의 협조를 이끌어내려면 북한과의 합의가 필요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날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을 남북한 공동으로 추진하겠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발언입니다.
[취재파일 - 안중근 유해 찾기 키워드]
▶ ① - '감옥서의 묘지'가 어딘가?
▶ ② - 주목해야 할 '둥산포' 묘지
▶ ③ - 최후 형무소장 '타고지로'의 악행
▶ ④ - "안중근 의사는 침관에 누워 계신다"
▶ ⑤ - "어렵고 힘들다"는 건 국민도 다 압니다
▶ ⑥ - 안중근 기념관은 돌아오는데…
▶ ⑦ - 사라진 안 의사 가족의 유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