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술 좀 아시는 분이라면 '우마오젠(五茅劍)'이라고 들어보셨을 거다. 중국 사람들이 당신에게 중국 명주의 순위를 아느냐고 물었을 때 '우마오젠'을 거론하면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깊은 호의와 친밀감을 표할 것이다. 우마오젠은 우량예(五糧液), 마오타이(茅台), 젠난춘(劍南春)의 앞글자를 모은 말이다. 중국 국주로 불린 마오타이와 전통의 강호인 젠난춘을 제치고 빅3 가운데 으뜸으로 꼽히는 술이 바로 쓰촨의 자존심 우량예다.
쓰촨(四川)성 이빈(宜賓)시 남부에는 가파른 절벽에 시신을 안치한 나무관을 매달아 놓은 무덤이 있다. 나무관을 받침대 역할을 하는 2~3개의 막대 위에 얹혀 놓은 '현관장(懸棺葬)'이다. 현관장은 예부터 중국 서남부에서 유행했다. 시신을 하늘의 신과 원활히 소통토록 하고 짐승에게서 보호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특히 박인(僰人)이 주로 사용했다.
박인은 기원전부터 쓰촨 남부, 윈난(雲南) 동북부, 구이저우(貴州) 서북부 일대에서 살았다. 12세기에 이르러서는 큰 세력을 형성해서 봉기를 일으켰고, 북송 군대와 일전을 벌였다.
봉기는 실패했고 박인은 북송의 철저한 통제 아래 들어갔다. 명대에 세력을 키운 박인은 봉기를 다시 일으켰으나 무위로 돌아갔다.
결국 명대 말기에는 다른 민족에게 흡수되면서 지금은 존재마저 알 수 없다. 하지만 박인이 빚었던 독특한 술 제조법을 바탕으로 희대의 명주가 탄생하니 그것이 바로 우량예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마오타이보다 더 많이 팔린다는 우량예는 다섯 가지 곡식을 원료로 배합해서 제조한 술이다. 곡식의 배합 비율은 수수 36%, 쌀 22%, 찹쌀 18%, 밀 16%, 옥수수 8%이다.
이런 우량예의 양조법이 북송대 박인이 빚었던 잡량주(雜糧酒)가 시초다. 잡량주는 여러 잡곡을 섞어 빚은 술이라는 박인의 양조법을 비하했던 작명법이다. 중국의 전통적인 양조법과 달랐기 때문이다.
송대까지 한족의 술은 황주(黃酒)와 고량주(高粱酒)로 나뉘었다. 황주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술 중 하나로, 쌀과 찹쌀에 보리누룩을 가미해서 빚었다. 보리누룩 때문에 짙은 황색을 띠고 알코올 도수는 15~20도로 낮다. 하지만 술맛이 진하면서 부드러워, 중국에서는 각종 요리 맛을 내는 조미료로도 사용됐다.
고량주는 말 그대로 수수를 주원료로 빚은 술이다. 제조 과정에서 수수를 100% 썼거나 향과 맛의 조절을 위해서 보리, 밀 등을 조금 배합해서 빚었다. 고량주는 원대에 아라비아에서 증류법이 전래되면서 제조되었다.
그러나 이전부터 중국에서 수수로 고량주를 빚었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에 증류법의 전래 이후 고태(固態) 발효법을 발전시켰다. 고태 발효법은 누룩을 구덩이에 넣은 뒤 발효시켜 딱딱하게 만드는 기술이다. 누룩이 얼마나 특색 있고 다양한 미생물이 생성되느냐에 따라 술의 맛과 향이 달라진다.
그에 반해서 박인은 여러 곡식을 균등한 비율로 넣어 양조했다는 점에서 아주 파격적이다. 이런 박인의 잡량주는 증류법이 대륙 전역에 퍼지면서 빛을 발했다. 증류와 숙성을 통해서 여러 곡식의 잡내나 침전물이 없어지면서 술맛이 좋아지고 숙취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명대에는 천(陳)씨 가문에서 운영하던 온덕양(溫德羊)에서 잡량주 양조법과 야오(姚)씨 가문 술도가의 기술을 더해, 오늘날의 바이주(白酒)를 탄생시켰다. 청대 말기 온덕양은 덩쯔쥔(鄧子均)에게 넘겨지고 양조법은 자오밍성(趙銘盛)에게 전수됐다.
덩쯔쥔은 온덕양을 이천영(利川永)으로 개명하고 자오밍성을 스승으로 성심껏 모셨다. 덩쯔쥔의 열의에 감복한 자오밍성은 온덕양의 양조비법을 모두 덩쯔쥔에게 전수했다. 본래 잡량주는 수많은 곡식을 넣어 빚었다. 하지만 덩쯔쥔은 새 양조법을 끊임없이 접목시켜 다섯 곡식으로 정형화하였다.
그렇게 증류한 술을 1909년에 처음 선보이면서 '우량예'라고 지었다. 그리고 우량예는 1915년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파나마만국박람회에서 금상을 획득한 이래 국제박람회나 경연대회에서 40여 차례나 수상했다.
이빈에서 105㎞ 떨어져 있는 루저우(瀘州)도 술의 도시(酒城)다. 실제로 크고 작은 술회사가 수십 개나 산재해 있다.
그중 루저우라오자오(瀘州老窖)와 랑주(郞酒)는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명주다. 중국정부가 지정한 17개의 국가명주 중 한 도시가 2개의 브랜드를 지닌 곳은 루저우와 구이저우성 쭌이(遵義)가 유일하다. 특히 루저우라오자오는 중국인들이 '농향(濃香)형 바이주의 비조(鼻祖)' '술의 우두머리(酒中泰斗)'라고 부를 만큼 명성이 자자하다. 이런 루저우에서 술을 빚기 시작한 것은 후한대 말기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