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미국 시각으로 3월 23일 하원 통상자원위원회(House Energy and Commerce Committee)에서 청문회가 열렸습니다. 이날 출석한 증인은 틱톡의 최고경영자(CEO) 추쇼우즈였습니다. 짧은 동영상을 올려 공유하는 앱으로 청소년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틱톡이 미국의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계속해서 나왔고, 마침내 바이든 대통령이 틱톡에 최후통첩을 보낸 직후 급히 마련된 자리였습니다. 지난주 미국 정부는 틱톡에 자산을 미국 기업에 팔지 않으면, 틱톡을 미국에서 퇴출하는 수밖에 없다고 통보했습니다.
싱가포르 국적에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추 CEO는 투자은행, 벤처캐피털 회사에서 오랫동안 일하다 지난 2021년 중국 테크 기업 바이트댄스(ByteDance)에 최고재무책임자(CFO)로 합류합니다. 바이트댄스의 미국 자회사 틱톡의 최고경영자를 겸하는 자리였습니다. 추 CEO는 틱톡을 둘러싼 미국 정부와 의회의 걱정, 비판을 잘 알고 있다며, 청문회를 틱톡을 향한 우려를 불식할 기회로 삼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추 CEO의 기대와 달리 잠시 숨을 돌릴 만한 쉽고 가벼운 질문이 거의 나오지 않은 청문회였습니다. 오히려 틱톡을 향한 미국 의회, 나아가 워싱턴 정가의 적대적인 분위기를 뚜렷이 확인할 수 있던 자리였습니다. 통상자원위원회 소속 토니 카르데나스(민주, 캘리포니아) 하원의원은 추 CEO를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에 비유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증인께서는 우리 위원회에 속한 당적이 다른 의원들을 하나로 뭉치게 해주는 이 세상에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평소에는 서로 견해가 달라서 자주 싸우는 민주당, 공화당 의원들이 모처럼 한목소리를 낼 만큼 틱톡 편을 드는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심지어 지난 몇 년간 열린 빅테크 의회 청문회를 보면, 민주당 의원과 공화당 의원이 트위터나 구글, 페이스북 CEO를 비판하고 몰아세우는 지점이 조금씩 다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유마저 거의 비슷했습니다.
초당적인 틱톡 때리기가 가능했던 이유
첫째, 틱톡에 동영상을 시청한 미국 이용자의 데이터가 고스란히 쌓일 텐데, 틱톡이 이걸 중국 정부나 공산당에 넘길 수 있다는 겁니다. 추 CEO는 중국 정부가 미국 데이터를 요구한 적도 없고, 그런 요구가 오더라도 미국 고객 데이터를 넘기는 일은 없을 거라고 말했지만, 의원들은 중국 법과 공산당과 기업들의 상하관계를 고려하면, 그건 믿을 수 없는 약속이라고 일축했습니다.
또 다른 우려는 중국 정부나 공산당이 틱톡의 동영상 추천 알고리듬에 개입해 프로파간다를 퍼뜨릴 수 있다는 겁니다. 이에 관해서도 추 CEO는 알고리듬을 투명하게 공개할 용의가 있고, 이미 미국 규제당국과 타협안을 협의해 마련해 뒀다고 해명했지만, 의원들의 반응은 떨떠름해 보였습니다.
트럼프와 틱톡, 바이든과 틱톡
잔뜩 기대하고 간 털사의 이날 유세는 트럼프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깁니다. 앞다투어 표를 예약한 사람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유세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체육관 좌석은 1/3도 차지 않았고,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한 트럼프는 이날 밤 선거 유세 총책임자를 곧바로 해고합니다.
트럼프 유세를 조직적으로 보이콧한 건 젊은 틱톡 이용자들이었던 것으로 밝혀집니다. 이날 기분 나빴던 것 때문에 화풀이를 한 건 아니겠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중국 때리기’의 일환으로 틱톡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는지, 여러 차례 틱톡을 미국 시장에서 퇴출해야 한다고 말하더니, 실제로 행정명령을 내려 틱톡을 금지합니다. 이때도 트럼프 대통령은 틱톡이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논리를 폈습니다. 틱톡은 행정명령에 근거가 없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이 틱톡의 손을 들어줘 행정명령은 무효가 됐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이후 전임자 트럼프 대통령이 편 정책을 잇따라 물리는 데 많은 시간을 썼으므로, 틱톡과 미국 정부의 갈등도 일단 잠잠해집니다. 그리고 2021년 CEO가 된 추쇼우즈는 미국 정부와 법정에서 다투는 것보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접점을 찾아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틱톡이 미국 정부에 로비하는 데 쓴 돈의 규모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는데, 2019년에는 로비에 거의 돈을 한 푼도 안 쓰던 틱톡이 지난해에는 무려 530만 달러를 로비에 썼습니다. 그 결과 틱톡은 미국 재무부와 오랜 시간 협의를 거쳐 데이터 유출이나 콘텐츠 검열을 하지 못하게 미국 규제당국의 엄격한 감독을 받아들이는 방안을 포함한 사업 제안을 마련합니다.
기업에도 국적이 있다
이날 청문회에서 추 CEO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퍼부은 의원들은 아마 대부분 당연히 기업의 국적을 따져야 한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중국은 미국의 지위를 위협하는 국가이고, 중국 정부와 공산당은 미국을 따라잡거나 깎아내리려는 의도를 공공연히 밝혔는데, 중국 정부의 하수인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 중국 기업이 미국에서 버젓이 사업하게 하는 건 너무 위험하다는 인식도 대체로 공유하는 듯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