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케어러 49만 영국, 23만 호주 '적극 지원'…한국은 '나 몰라라'
● 영 케어러 49만…지원법 만들고 직접 만나는 영국 국회
영국에서는 영 케어러를 "장애, 질병, 정신질환, 약물, 알코올 문제를 가진 가족이나 친척을 돌보는 18세 이하 청소년"으로 정의하고 있다. 10년 주기로 이뤄지는 영국의 인구조사 결과, 영 케어러는 2011년 49만 1천여 명으로 집계돼 2001년보다 8만 7천 명이 증가했다. (국회도서관. 2021, 7.13 <영 케어러 지원-영국, 호주의 사례> 인용.)
영 케어러가 50만 명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나자, 영국 국회는 이들에 대한 지원 내용을 담은 법안을 만들었다. <2014년 아동가족법/Child and Families Act 2014>이다. 이 법안 96조에 따르면 영 케어러는 자신의 요구에 대해 평가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가족을 부양하는데 필요한 지원을 정부에 요구하면, 정부는 이를 평가하고 지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 의원들은 법안 만들기에 그치지 않고 영 케어러들을 직접 만나기 위한 통로도 만들었다. 영 케어러 지원과 서비스 개선을 논의하기 위한 '영 케어러 의원협회(All-party Parliamentary Group for Young carers)'가 지난해 초 설립됐다. 영 케어러들이 의원들을 직접 만나서 자신들이 겪는 문제와 정책적 지원방법을 논의할 기구가 생긴 것이다.
2019년부터는 영 케어러에 대한 복지 급여도 지급되고 있다. 영 케어러들이 사회 안전망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에도, 부양 부담으로 비슷한 연령대의 친구들이 누리는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을 막겠다며 스코틀랜드 정부가 보조금을 신설한 것이다. 이 덕분에 16세~18세 사이의 영 케어러들은 연간 3백파운드, 우리돈 48만 원의 지원금을 받게 됐다.
● 23만 영 케어러 호주, 학비 보조하니 부양 부담 줄고 성적도 올라
호주는 장애나 신체/정신질환, 약물중독, 고령의 가족이나 친구를 돌보는 25세 이하 청년을 영 케어러로 정의하고 있는데, 이런 사람들이 2017년 기준 23만 5천여 명으로 집계됐다. 호주 정부는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2010년 케어러인정법(Carer Recognition Act 2010)>을 만들었다. 이 법에서는 장애인과 심신질환자, 노인에게 일상적인 돌봄을 제공하는 영 케어러의 사회적 역할을 인정하고 있는데, 특히 "영 케어러는 다른 아동 및 청소년과 동일한 권리를 가져야 하며 그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을 받아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15년부터 영 케어러 학비보조금 프로그램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올해 기준 영 케어러 1명 당 연간 3천 호주 달러(255만 원)가 지급됐다. 영 케어러들이 부양 부담 때문에 학업에 어려움을 겪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였는데 상당한 성과를 냈다. 학비 보조를 받는 영 케어러 중 37%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으로 조사됐고, 이들 중 55%가 보조금을 받은 뒤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거나 시간을 줄였다고 응답했다. 특히 학업성취도에도 긍정적인 영향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학비 보조금을 받은 영 케어러들 중 76%가 성적이 오른 것으로 확인됐다. (국회도서관. 2021, 7.13 <영 케어러 지원-영국, 호주의 사례> 인용.) 부양 부담이 학업 중단과 취업 실패, 빈곤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단초를 마련한 것이다.
● 올해 첫 실태조사 나선 일본…한 반에 한명 꼴 영 케어러.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올해 처음 영 케어러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전국단위 실태조사에 나섰다. 올해 4월 발표된 일본 후생노동성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중학교 2학년 학생의 약 6%,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의 약 4%가 영 케어러로 확인됐다. 이 두 학년에서만 영 케어러가 1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니, 중학교 2학년 17명 중 1명, 고등학교 2학년 24명 중 1명꼴이다. 가족을 부양하는 학생이 한 반에 한명씩 있는 셈이다. 이들이 가족 돌봄에 쓰는 시간은 1일 평균 4시간이며, 7시간 이상도 10%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조사 결과에 따라 일본 정부는 "제대로 된 영 케어러 지원에 대해 검토해 나갈 생각"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곧이어 네 가지 후속 대책도 발표됐는데, ①조기 발견, 조기 파악. ②상담 지원 ③가사 육아 지원 ④돌봄 서비스 제공이 주요 골자였다. 아직 확보된 예산은 없으며 내년도 예산 요구에 관련 사업비를 반영할 방침이라고 한다.
일본 내에서 영 케어러 지원에 가장 적극적인 지자체는 사이타마 현이다. 2020년 3월 전국 최초로 영 케어러를 지원하기 위한 조례를 제정했는데, 학교와 교육위원회가 영 케어러라고 생각되는 아동의 생활을 확인할 것을 의무화 하고 상담하고 지원기관을 연결해주도록 하고 있다. 사회 전체가 영 케어러를 지원하여 사회적 고립을 방지하겠다는 목적이다.
● 한국 정부는…"우리 일 아니다" "계획 없다"
인구가 6천8백만 명인 영국의 영 케어러가 49만여 명, 인구가 2천5백만 명인 호주의 영 케어러는 25만 명으로 집계됐으니, 인구 5천만 명의 한국 역시 적잖은 수의 영 케어러가 존재할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영 케어러가 무엇인지 개념조차 잡혀있지 않은 상황이다. 개념이 없으니 실태조사와 지원 정책도 없다. 정부 부처에 영 케어러에 대한 실태조사 계획과 지원 대책을 물었지만 '우리 일이 아니다'(여성가족부), '계획이 없다'(보건복지부)라는 답변이 돌아올 뿐이었다.
아직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을 뿐, 한국 사회도 이미 부양 부담과 빈고에 시달리는 영 케어러들이 적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저출산·고령화, 이혼, 비혼, 만혼의 증가라는 시대적 흐름이 맞물리면서 혼자 부양 부담을 떠안은 새로운 계층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중2와 고2 학급당 한 명 꼴로 영 케어러가 있다는 일본 사례에서 보듯, 한국 영 케어러들의 상당수가 학생일 가능성이 크다. 학생 업무를 담당하는 교육부와 청소년 정책을 담당하는 여성가족부, 복지대상자를 찾아내는 보건복지부와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책임감을 갖고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 영케어러③ [취재파일] 수면 아래 영 케어러…인식하고, 조사하고, 지원해야.
▶ 영케어러① [취재파일] 부양 부담→학업 중단→취업 곤란→빈곤…영 케어러를 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