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디 셔먼, 블링컨에 이어 '아시아 순방 2라운드'
따라서 웬디 셔먼 부장관의 순방은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의 최대 위협'으로 줄곧 강조하는 중국을 겨냥한 '반중 규합'의 일환으로 보입니다. 블링컨 미 국무장관의 지난 3월 일본과 한국 등 아시아 순방에 이은 '아시아권 순방 2라운드'인 셈입니다. 앞서 블링컨 장관은 지난 3월 오스틴 미 국방장관과 일본, 한국을 순차적으로 방문한 후 따로 알래스카로 이동해 중국 양제츠 외교담당 정치국원과 마주한 바 있습니다. 지난 2월 미국과 호주·인도·일본 등 4개국 쿼드 화상 외교장관회의에 이어 아시아 동맹국들과 결속을 다진 뒤 '피날레'로 중국을 맞닥뜨렸던 것입니다.
바이든 대통령도 취임 후 미국·일본·호주·인도 등 쿼드 화상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한·일 정상과 각각 정상회담을 한 후 G7·EU·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했습니다. G7 정상회의에선 사실상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을 억제하기 위한 '더 나은 세계 재건'을 발표했고, 나토 공동성명에선 중국을 "구조적 도전"(systemic challenge)으로 명시해 중국의 '군사적 야망'을 동맹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했습니다. 더 나아가 바이든 대통령은 유럽 순방 마지막 일정으로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도 만났는데, 이는 중국 견제를 위한 바이든 대통령의 노력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러시아와의 관계를 '통제 가능한 수준'으로 안정화해, 중국 압박에 집중하려는 모양새를 더 공고히 한 것입니다.
4년 만에 한미일 차관협의회 재개…정례화 가능성
셔먼 부장관을 비롯한 3국 차관들은 오는 21일 열리는 8차 차관협의회에서 회의를 정례화하자는데 공감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실제로 바이든 행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중국 견제를 노골화하며 한·미·일 외교장관과 안보실장, 정보수장간 회담 등을 잇따라 개최하고, 한·미·일 공조를 공고히 하는 데 주력해왔습니다. 이번 셔먼 부장관 방문 계기에 한·미·일 차관협의회의 정례화가 이뤄지는 것은 물론 한·일 관계 복원을 위한 사실상의 중재가 이뤄질지도 주목됩니다. 아울러 한·미·일 차관이 만나기 하루 전에 열리는 한·일 차관 협의에서 유의미한 대화가 오갈 수 있을지도 관심사입니다. 현재로선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강제동원 문제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배출 등 중요한 현안을 둘러싼 입장차가 매우 크기 때문에 접점을 찾기 어려울 거란 관측이 많지만,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발표에는 중국 빠졌지만…피날레로 '방중' 가능성
이와 관련해 미 국무부는 우리 측에 "이번 방문국과 발표 문안을 수정 중"이라고만 설명했지만, 일각에선 "중국 측이 공식 발표 전에 자국에 유리한 내용을 언론에 흘렸다고 판단해 연기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미 국무부는 예정 날짜로부터 하루가 지난 15일, 중국을 뺀 나머지 3개국 순방 일정을 발표했습니다. 발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파이낸셜 타임즈는 해당 결정 과정에 정통한 소식통 4명을 인용해, 중국 측이 '푸대접'을 해 중국 방문 계획이 중단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중국 측은 외교부 서열 5위인 셰펑 부부장을 만날 것을 제안했지만, 셔먼 부장관은 자신의 카운터파트인 러위청 부부장을 만나겠다고 역제안했고, 이를 중국이 거절해 무산됐다는 것입니다. 셔먼 부장관의 행보를 두고 미·중 간 신경전이 치열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물론 양측의 만남이 아직 완전히 결렬됐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의 한 고위 관리는 미·중이 셔먼 부장관의 방중 문제를 논의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방중이 성사된다면 아시아 순방 막바지에 이뤄질 것이라며 북한 문제에 있어서도 중국과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도 밝혔습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도 "미국과 중국이 의전 세부사항에 관해 실랑이를 벌이고 있고 아직 공식 발표할 준비가 안 돼 있지만 중국은 여전히 셔먼 부장관을 이번 달 하순 톈진에서 맞이하는 것을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셔먼 부장관이 어떤 인사들을 접촉할지 회담 세부사항을 논의 중인 만큼 협의가 마무리되면 회담이 추진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한 외교 소식통도 "중국이 방문국 발표에서만 빠진 것일 뿐 실제 미·중 양측이 만날 가능성은 매우 높은 것으로 안다"며 "좀 더 기다려보면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