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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대동강엔 죽은 물고기…수돗물 먹으면 배탈

우리는 통일에 준비돼있는가

매년 초가 될 때마다 북한에서 연례행사로 행해지는 일이 있습니다. 농촌에 거름을 지원하고 파철을 모아 공장에 보내는 일입니다. 올해 1월 초에도 어김없이 거름 지원과 파철 지원 작업이 대대적으로 이뤄졌고 북한 매체들은 이를 크게 보도했습니다.

농촌에 지원하는 거름을 도시에서는 어떻게 마련할까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인분을 모으는 것입니다. 북한에서는 매년 연말연초가 되면 집집마다 할당된 거름 양을 채우기 위해 이른바 '인분전투'가 벌어진다고 합니다. '인분전투'란 당국에 바쳐야 하는 인분량을 확보하기 위한 전투인데,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남의 인분을 훔쳐가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어 밤새 인분을 지키는 웃지 못할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고 합니다.

안정식 취파용-협동농장거름지원

하수 처리 안 돼 강물 지하수 오염 심각

이렇게 모아진 인분이 밭 등에 뿌려지면서 지하수 오염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생충 등 위생 문제도 심각합니다. 북한의 경우 아직 상당수가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고 있는데,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분뇨의 80% 가까이가 하수 처리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땅 속 곳곳을 흐르는 지하수의 수질이 온전할 리 없습니다.

강물 오염도 심각합니다. 생활오수는 물론 산업폐수도 대부분 강물에 무단 방류되고 있습니다. 대도시에는 하수 처리장이 있다고 하지만 시설 노후화와 부품 부족으로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전력 부족도 하나의 원인입니다.

하수 처리가 잘 안되면서 북한의 강들은 심각한 오염 상태에 처해 있습니다. 대동강에서는 평양시민들이 버리는 오수로 인해 물고기가 죽어 떠오르는 광경이 목격된다고 합니다. 압록강과 두만강은 북한과 중국에서 흘러드는 생활오수와 산업폐수로 인해 식수로 사용이 곤란할 정도로 강물이 오염되었다 하고, 원산만 연해에서는 어패류와 해조류가 아예 멸종됐다고 합니다.

안정식 취파용-북한 상수도

먹는 물 관리도 안 돼…수돗물 먹으면 배탈

관리되지 않는 하수는 환경 오염도 문제지만 먹는 물의 질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오염된 물이 상수원을 위협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다가 북한에서는 상수도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습니다.

정수장의 경우 1960년대 동독에서 상당한 투자를 해준 부분이 있지만 아직까지도 일제강점기에 건설한 것을 그대로 사용하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대부분 1단계 침전, 2단계 소독 방식으로 정수하나 염소 부족으로 소독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정수장에서 수질 검사를 한 뒤 결과가 좋지 않으면 적절한 조치가 취해져야 하지만 별다른 조치가 없는 실정입니다.

상수도관에도 문제가 많습니다. 상수도관은 대부분 주철관인데 노후화됐을 뿐 아니라 누수도 상당합니다. 특히 시·군 지역에는 공동 수도관만 설치된 곳이 많은데,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공동 수도관에 비닐관을 연결하고 용접한 뒤 시멘트 등으로 적당히 처리해 누수가 심하다고 합니다.

이렇다 보니 물은 끓여 먹지 않으면 안되는 수준입니다. 북한에서는 수도가 설치된 곳이라도 물 공급이 24시간 되지 않는 곳이 대부분인데, 물 공급이 재개될 때에는 초기에 '녹물'이 나온다고 합니다. 여름철에 수돗물을 그대로 먹었다가 배탈이 나는 사례도 많다고 합니다.

이런 수준이나마 수도가 가옥별로 설치된 곳은 평양과 개성 등 대도시 지역에 불과합니다. 일반 시·군 지역의 경우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공동 수도관만 설치된 곳이 많고, 농촌 지역에서는 우물이나 졸짱(땅 속에 관을 박아 수동 펌프로 물을 끌어올리는 설비)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우물이나 졸짱을 많이 이용하는 현실에서 분뇨 방류 등으로 인한 지하수 오염은 수인성 전염병의 위험을 높이고 있습니다.

전력 부족도 수도가 열악한 원인 중 하나입니다. 전력이 부족하다 보니 정수시설 등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고 고지대로 물을 끌어올리지도 못합니다. 아파트의 경우 위층까지 물이 공급되지 않아 1층에 내려와서 물을 길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안정식 취파용-평양 대동강

북한 지역 상하수도 시설 새로 구축해야…단기 대책도 필요

문제는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기본 자료조차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직까지도 일제강점기의 상하수도망을 그대로 쓰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상하수도망 도면이 아예 없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예전 도면들이 6·25전쟁을 거치면서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통일이 된다면 장기적으로 북한 지역의 상하수도 시설은 새로 구축해야 합니다. 하지만 전면적인 상하수도시설 정비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인 만큼 단기적인 대책도 필요해 보입니다.

먹는 물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단기적인 방법은 물을 끓여 먹는 것입니다. 상수도 수질이 좋지 않은 만큼 먹는 물은 반드시 끓여 먹도록 해야 안전을 보장할 수 있습니다. 다만 맹물을 끓여 먹기는 껄끄러울 것인 만큼 보리차나 옥수수차, 메밀차 같은 차 종류를 대폭 지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리차나 옥수수차 같은 차들은 부피나 무게가 크지 않으므로 남한 내에 재고만 충분하다면 대규모 지원이 가능합니다.

장기적으로 북한에 상하수도시설을 새로 갖춰 나가게 될 경우 남한처럼 수도 요금을 부과할 필요가 있을 텐데, 북한 주민들에게는 이것이 생소할 수 있습니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물 이용료는 미미한 수준으로 대개 집 이용료에 포함돼 있어 물을 사서 먹는다는 인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북한의 물 사정이 워낙 안 좋은 만큼 깨끗하고 안정적인 물 공급만 가능해진다면 북한 주민들이 물 이용료를 지불할 용의가 있을 것으로 연구자들은 판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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