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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조국 사태 후 1년…판단을 대체한 신념

[취재파일] 조국 사태 후 1년…판단을 대체한 신념
지난해 8월 27일 오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에 나가 있던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조국 당시 후보자가 출근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 사무실에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후보자 일가와 관련해 이미 많은 의혹이 제기되어 있던 상황. 항상 비슷한 시간대에 출근해 의혹에 대한 입장과 자신의 소회를 적극적으로 밝혀왔던 후보자였다.

후배 기자는 뭔가 일이 생긴 것 같다는 소문이 현장에서 돌고 있다며, 검찰이 후보자 의혹과 관련해 압수수색을 나간 게 아닐까 추정했다. 인사 청문회 준비 기간에 압수수색을 나간다? 그것도 검찰을 감독하는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상대로? 기존 관행에 기댄 내 상식과는 맞지 않았다. 그래서였다. 후배의 추정을 웃어넘기며, 특정 언론사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추정했다. 이 추정이 깨어지기까지는 불과 1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후보자 협의된 의혹 제거용 압수수색 일 것". 검찰의 압수수색을 두고, 소위 짜고 치는 고스톱일 것이라는 이야기가 검찰 내부에서 나왔다. "설마 검찰총장 윤석열의 1호 수사가 법무부 장관 후보자 관련 수사겠느냐"는 이야기도 있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모두 우스운 이야기지만, 그만큼 당시 검찰의 압수수색은 검찰 내부에서도 예상치 못 한 일이었다.

● 검찰은 왜 조국 전 장관 일가 수사를 시작했을까

검찰의 수사 착수 이후 얼마 되지 않아, 검찰 관계자 A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조국 수호 촛불 집회가 본격화되기 전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A는 검찰의 수사 착수 배경을 알 만한 사람이었다. 왜 검찰이 청문회 준비 기간인 8월 27일에 압수수색을 나간 건지, 수사에 나선 배경이 뭔지를 물었다. 여당을 중심으로 '개혁에 대한 저항'이 수사 착수의 배경으로 이야기되던 시점이었다. A의 답은 이랬다.

"검찰 개혁을 막기 위해서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 잘 알고 있다. 그런데 후보자 관련 수사를 한다고 검찰 개혁을 막을 수 있겠나? 혹시나 검찰 수사 때문에 후보자가 낙마할 수도 있다고 치자. 그러면 정권이 가만히 있겠나. 후보자보다 더 세게 검찰을 몰아붙일 사람을 장관으로 보내지 않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사에 나선 건, 오직 수사의 관점에서 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던 걸로 알고 있다."

수사의 관점이라는 건 뭘까? 검찰 내부에서는 국정농단 사건의 학습효과라는 말이 있었다. 국정농단 사건 당시, 사건을 묵히고 있다가 뒤늦게 압수수색에 나서 비판받았던 걸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취지다. 의혹의 대상이 법무부 장관 후보자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미 여러 의혹이 제기돼 수사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후보자가 법무부의 수장으로 취임하면 제대로 수사할 수 없기에 서두른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검찰 개혁에 대한 저항이 아닌, 제대로 수사하기 위해서 압수수색을 서둘렀다는 것으로 귀결되는 주장들이다.

● 특별수사 축소·폐지와 거리 멀었던 조국 표 검찰 개혁안

의혹이 제기됐다고 해서 언제 검찰이 모든 사건을 수사했었나. 이른바 선택적 수사로 '정치 검찰'이라고 비판 받아 오지 않았나. '수사 관점에 따른 수사 착수일 뿐'이라는 이야기를 온전히 믿기 힘든 이유다. 그런데 '정치 검찰'이라는 비판은 주로 죽은 권력에 대해서는 과도할 정도로 수사하거나 살아있는 권력이 원하는 방향으로 수사한 결과 나왔던 게 아니었나.

이런 측면에서 임기 말도 아닌 임기 중반,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에 나선 건 상당히 이례적이다. A의 이야기를 마냥 흘려들을 게 아니라, 한 번쯤 귀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조국 전 장관의 후임으로 누가 왔는지, 그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감안할 때 더욱 그러하다. 덧붙여 비슷한 시기 검찰 관계자 B가 한 이야기도 참고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검찰 개혁을 막기 위해 후보자 수사에 착수했다? 동의하기 어렵다. 조국 후보자는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 검찰의 권한을 그렇게 축소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동안 '정치적 수사'라고 비판받았던 것의 상당수가 특별수사지만, 특별수사를 명문화해서 보장해 주겠다고 한 게 조국 수석 아니었나. 개혁을 막기 위해서라면, 검찰이 수사를 할 게 아니라 후보자를 설득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후보자는 정권의 실세 중의 실세로 꼽히는데, 후보자를 설득할 수만 있다면 누가 검찰개혁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사를 한 이유가 무엇이겠나."

누군가는 조국 전 장관을 '검찰 개혁'의 동의어로 보고 있지만, 민정수석 조국의 행보는 검찰개혁과는 거리가 있었다. 검찰 개혁의 요체는 검찰에 집중된 권한의 축소였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와 같이 '정치적 수사'로 평가받는 수사의 대부분이 특별수사, 직접수사에서 비롯된 것 인 만큼, 문재인 정부에서 특별수사는 대폭 제한되거나 폐지될 것이라는 전망 또는 기대도 있었다. 특별수사를 통해 검찰이 개혁의 파고를 넘어 오히려 역공을 가한 결과, 개혁이 좌초된 경험도 있었다. 하지만, 검찰의 특별수사(직접수사)를 명문화해 보장해 주겠다고 한 건 조국 민정수석이었다. 가뜩이나 비대하다고 평가받은 서울중앙지검에 '4차장 검사'라는 보직이 추가로 생긴 것도 조국 민정수석 때였다. (참고 [취재파일] '검찰 특수부 축소' 그땐 틀리고 지금은 맞다? )

● '그분은 정직한 사람…우리는 믿고 싶다'

올해 5월, SBS는 검찰의 신라젠 수사 관련 보도를 했다. (참고 [8뉴스]신라젠 문은상, 셀프 이사회에 자기 돈 없이 인수) 문은상 신라젠 당시 대표가 신약 개발 실패 정보를 미리 알고 보유 주식을 처분해 부당 이득을 취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주를 이루고 있던 때였다.

SBS 보도는 문 대표의 혐의는 미공개 정보 이용 혐의가 아닌 주식 상장과 관련된 혐의(자본시장법 위반 및 배임 혐의)라는 내용이었다. 검찰이 상장 과정에서의 여러 문제점을 포착해 수사하고 있으며, 문 대표와 공범 관계라고 검찰이 의심하는 신라젠 전직 임원들은 구속됐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문 대표가 받는 혐의가 상장 이후의 개인 비리가 아닌 상장 과정과 관련된 것이기에, 수사 결과에 따라 신라젠의 상장 적격성이 문제 될 수도 있다는 취지였다.

보도 이후, 신라젠 주주라고 소개하신 한 독자의 메일을 받았다. SBS 보도로 신라젠의 주식 가치가 훼손됐다며 항의하는 내용들이었다. 여러 근거를 들어 신라젠 상장은 적법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제시한 근거 대부분에 동의하기 어려웠는데, 하나의 근거 앞에서는 마땅히 대꾸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신라젠 문은상 대표 구속
'문은상 대표를 얼마나 아는가? 문 대표는 정직하신 분이다', '문 대표는 성공이 보장된 치과의사의 삶을 포기하고, 암환자들을 위한 치료약 개발에 헌신한 사람이다', '건강까지 바쳐가며 연구에만 헌신한 사람이 주식 상장 과정을 어떻게 알겠나', '주주들은 문은상 대표를 신뢰한다', '죄가 있든 없는 우리는 문은상 대표를 믿고 싶다', '검찰이 내부 치부를 감추려고 문 대표를 죽이려고 하고 있는데, 언론이 보호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

'개인에 대한 믿음'으로 자신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경제적 판단을 하겠다? 말문이 막혔다. 문 대표가 구속되거나 기소되면 가뜩이나 추락한 신라젠의 주식 가치가 더 떨어질 거라고 생각해 현실을 회피해버리려는 마음이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 대표는 아무런 불법 행위를 한 적이 없는 고결한 사람이어야 한다거나 문 대표가 하는 일은 모두 옳아야 한다는 신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 신념을 위한 정보의 취사선택..조국 사태가 남긴 것

검찰의 조국 전 장관 관련 수사 착수 배경을 이야기하다 뜬금없이 위 사례를 끄집어낸 건, 조국 사태가 낳은 우리 사회의 병리적 증상의 한 단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검찰 관계자 A나 B의 이야기는 일고의 가치도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 조국 사태는 '개혁을 막기 위해 무고한 사람을 인질로 잡은 검찰의 쿠데타', '검찰과 유착한 적폐 언론의 농간'으로 규정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믿음에 반대되는 정보는 '개혁 대상의 저항 혹은 음모'이거나 '가짜뉴스'로 가볍게 치부될 수도 있다.

신라젠 주주가 보낸 메일 내용엔 이런 사고 체계가 녹아 있었다. '부녀자만 있는 집을 성인 남성들이 11시간 동안 탈탈 털었다'는 서사가 조국 사태에 대한 일부 사람들의 신념을 강화했듯이 '무리한 검찰 수사로 2차 소환 조사 도중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갔다'며 문은상 대표에 대한 믿음을 강화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판단은 여러 정보를 습득한 이후에 내려져야 하지만, 믿음이 판단을 대체하고 그 믿음을 강화하기 위한 정보의 취사선택이 벌어진 걸로 보인다. 논쟁의 영역이 종교의 영역으로 비화되면서, 사고 체계가 교란된 결과 아닐까. (변호인의 조력을 제대로 받기 어려워 절차와 범위를 하나하나 따지기 힘든 일반 시민들이었다면 압수수색에 몇 시간이 걸렸을까? 피의자로 소환돼 조사를 받다가 조사를 중단하고 귀가하는 건 쉬운 일일까? 조사나 압수수색 과정에서의 인권 보호는 더욱 강화되어야 하지만, 신념을 강화하기 위해 동원된 앞선 서사는 잘못 차용된 걸로 보인다)

헌정 사상 2번째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이 발동된 '전직 채널 A기자 강요미수 의혹 사건'. 여러 맥락에서 전례 없는 이 사건은 조국 사태의 유산이다. 누군가에서 이 사건은 '검언 유착 사건'이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조국 사태'에 대한 규정이 그러했듯, 이 사건에 대한 규정도 논쟁의 영역이 아닌 신념의 영역이 되고 있다. '조국 수호 촛불 집회'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른바 '반 조국 세력'이 결집했던 것처럼, '전직 채널A 기자 사건'은 '정언 유착 사건'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는 듯하다. 이런 와중에 '전직 채널A 기자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검찰의 기소 여부는 증거가 아닌 수사팀의 의지에 달렸다는 이야기가 검찰 내부에서 회자되고 있다. 수사의 영역까지 신념의 영역으로 비화되고 있다는 씁쓸한 이야기다.

● 우리 사회는 화해할 수 있을까

조국 사태가 시작된 지 1년. 대부분의 논쟁은 진영 논리에 포섭돼 산화되고 있다. 신념에 따른 맹목적 사고 속에 논쟁의 영역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합리적 논쟁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사람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현상이다. 조국 사태 1,2심 판결 이후일 내년 이맘때쯤에는 좀 달라질 수 있을까. 사람들 사이의 간극은 좁혀질 수 있을까. 갈라섰던 사람들이 논쟁의 장에서 얼굴을 마주할 수 있을까.

가능성이 높아 보이진 않는다. 현재의 증상이 촉발되는데 기여한 사람들이나 이 증상을 개선시킬 수 있는 사람들이 태도를 바꿀 가능성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20대 대선이 다가올수록 현재의 상황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도 늘어날 것이다. 현재 상황이 지속되거나 강화되어야 상업적 이익을 누릴 수 있는 사람들도 이미 상당수 있는데, 지금 상황이 쉽게 개선될 수 있을까. 훗날 조국사태는 우리 사회 곳곳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꾼 결정적 분기점으로 연구의 대상이 될 듯하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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