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런 기대는 헛된 꿈이 되고 말았습니다. 일본 정부는 방사능 오염 의혹이 있는 후쿠시마산 식자재를 올림픽 선수촌 메뉴에 사용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일본에는 후쿠시마산 식자재 외에도 좋은 식자재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베 일본 총리는 굳이 방사능 우려가 있는 후쿠시마산 식자재 사용을 강행하겠다고 나서 큰 파문이 일었습니다.
저는 그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에 질문을 던졌습니다. 다카야 마사 조직위 대변인의 답변은 불행히도 저의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그의 대답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이번 도쿄올림픽은 유치에 나설 때부터 후쿠시마 지역의 부흥을 모토로 내걸었다. 후쿠시마산 식자재를 사용하는 것은 피해 지역인 후쿠시마를 지원하는 차원에서 하는 것이다. 또 FAO(국제농업기구)와 IAEA(국제원자력기구)가 2018년에 엄격한 국제기준으로 공동 조사를 했는데 방사능 검사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점이 확인됐다. 2013년 이후 방사능 기준치를 초과한 식자재는 단 하나도 없다. 따라서 후쿠시마산 식자재 사용을 취소할 계획은 전혀 없다."
다카야 마사 대변인의 말은 일본 정부와 후쿠시마현의 공식 입장과 궤를 같이 합니다. 하지만 도쿄 조직위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신뢰하기에는 여러 의문점이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일본의 권위 있는 의학자와 병리학자 8명은 2018년 후쿠시마현 니혼마츠시의 방사능 오염 실태를 조사한 논문을 국제 학술 저널에 발표했습니다. 이 논문에 따르면 2017년 니혼마츠 시에서 측정된 버섯 가운데 무려 40.7%가 발암물질인 세슘 137의 기준치인 100 베크렐을 초과했습니다.
결국 일본 학자들의 연구 조사에 착오가 있었거나 아니면 일본 정부나 도쿄 조직위가 불리한 자료를 일부러 축소했거나 은폐하고 있는 것, 둘 중의 하나일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 측이 일본의 주장을 그대로 믿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입니다.
어찌 됐든 일본은 후쿠시마산 식자재를 선수촌 메뉴에 올릴 것이 확실합니다. 이를 제지할 유일한 힘을 갖고 있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1년 가까이 수수방관하며 사실상 묵인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206개국 선수단은 대부분 선수촌 내 식당에서 식사 문제를 해결합니다. 문제는 어느 메뉴에 후쿠시마산 식자재가 들어있는 지를 알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선수촌 내 식당에서 제공하는 음식을 안 먹는 것이 최선이지만 이게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각국 선수들이 올림픽에 입촌하면 훈련과 경기가 반복되는데 선수촌 내 식당에서 식사하는 게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대한체육회는 후쿠시마산 식자재가 이슈로 떠오른 지난해 하반기부터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어쩔 수 없이 선수촌 내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급적 우리가 직접 만든 음식을 제공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 SBS 보이스(Voice)로 들어보세요.
일본이 후쿠시마산 식자재 사용을 굳이 고집하는 바람에 우리 국민의 세금이 필요 이상으로 많이 들어가고 우리 조리사들이 아주 힘든 여건에서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생긴 것입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 열리는 올림픽에서 한국선수단이 먹는 문제로 이렇게 마음고생을 하게 될 줄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습니다.
우리 선수들이 후쿠시마산 식자재가 포함된 선수촌 음식을 먹지 않으려면 헨나 호텔에 와서 먹든지 아니면 대한체육회 직원들이 선수촌으로 도시락을 배달해야 합니다. 하루 평균 200개 정도의 도시락을 만들어 신속하게 배달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폭염에다 선수촌 통관이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메달을 따기 위해 구슬땀을 흘려온 태극전사들과 대한체육회 소속 조리사들은 메달 획득만큼이나 힘든 '식사 전쟁'까지 치러야 할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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