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는 특정 시점보다는 흐름이 중요합니다. 선거 초반에는 민주당의 '블루 웨이브', 상하원 모두 민주당의 압승이 예상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본격 선거철에 들어서면서는 트럼프 지지 세력, 이른바 '샤이 트럼프' 표심이 결집할거란 전망도 팽배했습니다. '트럼프 대 반(反) 트럼프' 구도가 확고해지면서 여론조사 흐름은 선거 중반 꿈틀거렸습니다. 선거 막판에 들어서는 상원은 공화당, 하원은 민주당이란 판세로 굳어졌고 이런 여론조사 흐름은 결과적으로 중간선거 표심과 맥을 같이 하게 됐습니다.
미국 여론조사기관들은 선거 하루전인 11월 5일에도 조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선거분석사이트 '파이브서티에이트', 정치분석매체 '리얼클리어폴리틱스', CNN 의뢰를 받은 여론조사기관 SSRS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들은 '마지막(Final)' 분석을 통해 선거 막판 민주당의 '블루웨이브' 기세가 꺾였지만 그래도 하원에서는 민주당, 상원에서는 공화당 우세라는 관측을 내놨습니다.
우리나라에는 'D-1 여론조사'가 없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선거 하루 전까지 여론조사는 활발히 이뤄지지만, 이를 유권자들에게 공표할 수 없도록 법제화돼 있습니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선거일 6일전부터 여론조사 공표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언론사는 일주일전 발표된 여론조사로 선거 당일까지 보도해야 하고, 유권자도 '오래된 여론조사'로 현재 판세에 대한 부정확한 정보를 참고해야 하는 상황인 겁니다. '깜깜이 선거'라는 비판이 나오는 주된 이유입니다.
과거 우리나라 선거에서 '여론조사 대실패'라는 비판이 자주 있었습니다. 여론조사 결과가 선거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는 건데요. 여론조사기관 입장에서는 꽤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6일전 공표 금지' 규정 하에서는, 선거 전날까지 요동치는 우리나라 표심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여론조사는 사실상 없습니다.
미국의 'D-1 여론조사'가 특별한 게 아닙니다. 사실 선거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이 있는 건 우리나라나 유럽 일부 국가 뿐인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론조사 기관 자체가 대부분 민간회사이고, 정부가 직접 규제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 규제는 여론조사를 바라보는 철학의 차이에서 기인합니다. 우리나라는 부실하거나 잘못된 여론조사로 국민의 선택이 잘못될 수 있고, 잘못된 선택이 선거 결과로 이어지면 되돌릴 수 없으니 사전에 규제하자는 뜻이 강합니다. 하지만 미국이나 대다수 국가들은 저품질, 불량 여론조사는 시장에서 걸러지게 되어 있고, 유권자가 충분히 그러한 식견을 갖췄다는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합니다.
이러한 철학 때문에 규제의 방식도 다르게 나타납니다. 우리나라의 선거 관련 여론조사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의 직접적 규제를 받는 반면, 미국 여론조사는 미국여론조사협회(AAPOR)의 가이드라인을 '참고'하는 것에 한정됩니다. 우리나라 언론사들은 여심위의 가이드라인과 여론조사 공표 규제를 꼼꼼하게 따라야 하지만, 미국 언론사들은 자체적으로 가이드라인(Poll Guideline)을 마련해 이를 따르고 있습니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실장은 "우리 유권자들의 성숙한 의식 변화에 따라 여론조사 규제가 완화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