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정체불명의 소문에서 시작했습니다. '시진핑 주석의 책사 왕후닝 중앙서기처 서기가 실각한다'..'해이해진 공직 기강을 리잔수 전인대 위원장이 강압적(?)으로 누르고 있다'는 권력 내부 얘기가 돌았습니다. 이어 해프닝이 더해졌습니다. 관영 신화통신 홈페이지에 '화궈펑의 사죄'란 뜬금없는 기사가 게재된 겁니다. 화궈펑은 1976년 마오쩌둥 주석이 숨진 뒤 당 주석에 올랐던 인물입니다. 그런 화궈펑이 주석 시절 자신에 대한 개인 숭배를 조장했다며 당 중앙기율위에 고발당한 내용이 실린 기사가 전후 맥락도 없이 게재됐다 삭제된 겁니다. 이를 두고 시 주석의 1인 독재를 비판하려는 누군가의 의도적인 도발이라고 추측이 곁들여졌습니다.
이런 소식들을 가장 적극적으로 보도하는 매체는 미국 소재 중화권 매체인 보쉰(博迅), 자유아시아방송(RFA), 미국의 소리(VOA), 프랑스 국제라디오방송(RFI) 등 서방 언론들입니다. 여기에 홍콩 매체들이 관련 내용을 받아서 보도하거나, 반대로 관련 내용에 대한 반박하는 형식으로 보도를 이어갔고, 이를 또다시 국내 언론들이 재생산하는 상황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겁니다. 때문에 사안 자체가 애초부터 시진핑 주석 체제를 바라보는 서방 언론들의 특유의 시선이 가미된 이슈라고 볼 여지도 있습니다.
중국 국내외 전문가들은 대체로 시진핑 주석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는 주장을 일축하고 있습니다. 현실성이 없는 얘기라는 거죠. 그 이유로 시 주석의 권력에 대항할 만한 반대 세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시 주석이 당과 군을 장악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공산주의청년단, 태자당 등의 세력들이 대항할 수 있는 결집력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만약 시 주석 상황이 이런 정도라면, 지금 시 주석이 한가롭게 중동과 아프리카를 돌아다닐 수 있겠느냐는 얘기도 합니다.
다만 시진핑 개인숭배 분위기를 다소 누그러뜨리려는 분위기는 읽힌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특히 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중국에 대한 자화자찬, 과대평가 풍조를 비판하는 내용의 평론을 잇따라 게재한 것은 시 주석 개인에 대한 지나친 개인숭배 분위기를 식히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를 두고도 일부에선 시 주석의 위상이 예전만 못한 거 아니냐는 해석도 하지만, 베이징 외교가의 일반적인 인식과는 다소 동떨어진 겁니다. 시 주석의 위상이 흔들릴만한 징후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게 중론입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시 주석의 개인숭배 분위기를 식히려는 건 베이다이허 회의를 의식한 조치란 해석을 내놨습니다. 베이다이허 회의는 중국 전현직 원로와 지도부들이 함께 모이는 비공개 회의를 말합니다. 올해는 다음 주 정도에 개막할 거란 예측이 많습니다. 베이다이허 회의 특성상 국내 정치 문제를 주로 논의하는 자리인지라, 시 주석도 전직 당 원로들의 잔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는 거죠. 상황이 이럴 텐데, 시 주석 입장에선 자신의 개인숭배 이슈가 도마에 오르는 건 결코 달가운 상황은 아니겠죠?
실제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한 중국 국내 증시와 환율 시장은 불안정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시진핑 정부의 마지노선인 6% 성장도 장담할 수 없을 거라는 전망도 나오는 실정입니다. 지금까지는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말 그대로 돈으로 찍어 눌렀던 중국 민심이 흔들릴 경우, 정치적 불만은 어느 틈으로 삐져나올지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터무니 없어 보이는 이런 위기설이라도 중국 국내외의 발화 요인들이 존재하는 한 그 잠재적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게 시 주석 체제의 냉정한 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