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경우인 ICBM 열병식을 상정하고, 이후 국면을 고민하는 게 합리적입니다. 평창 올림픽 하루 전날, 북한 예술단이 강릉에서 공연을 하기 직전에 도발이나 다름없는 무력시위를 하는 모순적 상황이 펼쳐지게 됩니다. 올림픽 전날 ICBM 시위에 미국을 비롯한 한반도 주변국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우리 정부가 상황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서 남북 대화의 단기적 향배가 결정됩니다.
● 지금 평양 미림 비행장은?
통상 북한 열병식에 참가하는 전체 병력, 즉 열병 제대는 30여 개 열병 종대로 구성됩니다. 1개 열병 종대가 300여 명입니다. 이달 초 위성사진에는 31개 열병 종대가 식별됐습니다. 1만 명 정도의 병력입니다. 열병식이 코앞에 닥쳤다는 징후입니다.
북한이 괜히 긴장감 조성하려고 그 자리에 가림막을 세웠을 리 만무합니다. 어떤 미사일을 갖다 놓느냐가 관건입니다. 북한이 핵 무력 완성을 선포하게 한 ICBM급 화성-15형, 화성-14형과 괌 포위사격을 위협한 화성-12형이 열병식에 나설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지의 액체 로켓 미사일 화성-13형과 현재 개발 중인 것으로 보이는 고체 로켓 미사일 북극성-3형의 등장도 점쳐집니다.
지난주부터는 주일미군 RC-135 정찰기의 한반도 출격이 잦아지고 있습니다.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정찰기입니다. 이 역시 평양 주변에 TEL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이번 열병식은 평창을 겨냥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북한은 건군절을 기존 4월 25일에서 2월 8일로 옮기는 작업을 오래전부터 해왔습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건군절 날짜를 바꾼 건 김정은이 김일성, 김정일의 꼬리표를 떼고 독립하려는 시도"라고 해석했습니다. 핵 무력 완성을 선언했고 김일성, 김정일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행사이니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미사일을 꺼내는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입니다.
● 관건은 열병식 이후 정국 관리
북한은 작년 김일성 생일인 이른바 태양절 4월 15일에도 대규모 열병식을 했습니다. 초대형 미사일 발사관을 탑재한 TEL이 시선을 끌었습니다. 러시아 ICBM과 유사한 괴 미사일의 정체는 지금도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작년 4월은 북폭설이 제기됐던 때입니다. 4월 열병식에 즈음해 미국은 칼 빈슨 항모 타격 전단에 이어 니미츠 항모 타격 전단까지 서태평양으로 내보냈습니다. 작년은 또 김정은이 광적으로 미사일 발사에 집착했던 때여서 그랬는지 열병식 다음 날 오전 탄도 미사일까지 쐈습니다. 한반도 정국이 꼬였습니다.
그럼에도 북한이 2월 8일 열병식을 감행한다면 이는 "대화는 대화대로 하되 핵 보유국 지위는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게 북한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한미가 모두 불쾌한 지점이지만 올림픽 분위기와 대화의 판을 짓뭉개며 북한을 맹비난하고 군사를 부리기도 쉽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북한의 외통수에 걸려든 형국입니다. 김용현 교수는 "열병식은 어차피 일종의 쇼이고 중요한 건 다음 단계"라며 "북한이 미사일 발사 같은 노골적인 추가 도발을 하지 못하도록 주변국들이 외교적 노력을 경주하며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남북은 대화하고 교류해서 종국에는 통일해야 합니다. 자존심 버린 채 눈칫밥 먹어가며 적잖은 희생으로 유지하고 있는 남북 대화입니다. 어렵게 잡은 대화의 모멘텀인만큼 열병식을 현명하게 극복하고 북한을 좀 더 판이 커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