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나오는 비트코인 관련 기사를 보고 "저런 게 있나 보다."라고 여기던 사람들도 이제는 "진짜 뭔 일이 났다 보다."라고 뒤늦게 가상화폐 시장을 기웃거린다. 한쪽에선 "언제 꺼질지 모르는 투기 광풍이다, 피라미드식 사기다."라는 매도가 이어지지만, 다른 한편에선 "4차 산업혁명의 총아며 이제 시작이다."라는 평가도 나온다. 그 와중에 직장인, 주부, 노인, 미성년자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이 '신상품'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사실 가상화폐 열풍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미국과 중국, 일본, 영국 등 선진국과 개도국을 가리지 않고 그 열풍이 불고 있지만, 그 열기가 가장 뜨거운 곳은 단연 한국이다. 우리 스스로 느끼기에도 그런데,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딱 찍어놓고 "가상화폐 열풍이 한국보다 뜨거운 곳은 없다"라고 표현했고 CNN도 심층뉴스로 한국의 가상화폐 열기를 전했다.
다른 뭔가가 있다면 우리 사회가 낳은 좌절이 아닐까 싶다. 새 출발하려는 사람들은 가혹한 주변 환경 때문에 목표점의 중간에도 못 미칠 것 같다는 낭패감을 느끼고, 중간쯤 달린 사람들 역시 아무리 해도 넘어설 수 없는 벽을 만난 상황에서, 그 좌절을 이기게 해줄 것 같은 모처럼의 기회가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인 것이다.
자본주의는 태생적으로 격차를 낳을 수밖에 없다. 그 격차가 한국이 OECD 국가 가운데 수위에 속한다. '사상 최악'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취업난 때문에 청년들은 꿈을 잃고, 자녀의 진학과 결혼에 많은 돈이 들어가는 중년은 고용불안에 괴로우며, 빈곤율 1위의 노인들은 살아야 될 날이 많이 남아 곤혹스런 현실에서, 비트코인은 잘하면 이를 한꺼번에 해소할 수 있는 기적의 치료제로 보일 수 있다.
우리 사회는 한때 다 함께 성장의 과실을 누리던 과정이 있었다. 7, 80년대 고도 성장기에 기업들은 정부의 도움과 값싼 노동력 덕분에 순식간에 규모를 키웠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이 되는 와중에 가계상황도 하루가 다르게 바뀌었다.
도시로 나가 공장에 취직한 아들딸이 보내준 생활비 덕분에 시골 초가집은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어 갔고, 집안엔 TV와 세탁기가 들어찼다. 노력만 하면 취직도 결혼도 쉬웠다. 청약통장으로 좋은 곳에 아파트를 사서 집값이 올라 자산을 늘리는 재미도 맛봤다.
사람은 결국 비교의 동물이다. 상대적인 박탈감은 좌절을 낳는다. 노력해도 개선되지 않으면 좌절감은 더 커진다. 그 좌절의 돌파구 가운데 하나가 비트코인이란 생각이 든다. 비트코인에 투자하면서 불안하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가상화폐의 가치는 말 그대로 실체가 없는 가상이기 때문이다. 그 가치는 사용자들의 믿음에 의해 생명력을 지닌 거지만, 불안한 믿음 때문에 아직까진 그 생명력이 견고하다곤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이 없어 신혼집을 마련하지 못한 예비신랑, 몇 년째 취업을 못 한 취업준비생, 강남권 아파트 폭등에 박탈감을 느끼는 주부들이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서 불안한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
열심히 공부해 취업하고, 때가 되면 결혼해 자연스레 아이 낳고, 아껴서 내 집 마련해 오순도순 살아가며, 늙어서는 모아놓은 돈과 자식들의 작은 도움으로 여생을 보내는, 어떻게 보면 '평범한 일상'이 '비범한 성취'가 돼 버린 현실이 비트코인 광풍의 근저에 있음을 부인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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