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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연금 꺼리고 해지하는 2030세대…디스토피아의 싹인가

[취재파일] 연금 꺼리고 해지하는 2030세대…디스토피아의 싹인가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 이 흔한 말은 예측 못 할 질병이나 사고로 갑자기 생을 마감하는 사건을 대할 때, 가장 시니컬한 정답으로 통용돼 왔다. 앞으로는 반대다. 사람은 얼마나 오래 살지 모른다는 의미에 가까워 질 것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신과 같이 불멸하는 세상은 언제나 매력적인 이야깃거리다. 그런데 이 말에서 ‘사람’을 ‘우리’로, 아니 ‘모두’로 바꾸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신이 된 인간', <호모 데우스>의 이 도발적인 제목은 그저 비유로 쓰인 게 아니다. 저자 유발 하라리가 보기에, ‘신’(Deus)과 인간의 경계는 오직 '그가 생명을 다룰 수 있는가'하고 물었을 때, 대답에 따라 그어진다. 생명은 그 탄생과 소멸을 신만이 알고 행할 수 있다고 믿으며, 인류는 자신들의 지난 역사를 써왔다.

그러나 그 믿음은 이제 절대성을 잃었다. 불치병 퇴치라는 명분에서 날개가 돋아난 유전자 조작, 갖가지 생명연장 프로젝트의 현 주소를 쫓아 분주히 책장을 넘기다보면, ‘지금 인류는 이미 생명을 다루는 존재로서 신과 다를 바 없다‘는 도발(?)은, 마치 오늘 뉴스처럼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여력 없어 연금 보험 해지하는 20,30세대
2017년 우리가 사는 한국. 세계 10위 권 경제 대국이니, 유발 하라리의 상상력을 적용해도 무리가 없는 나라일 것이다. 여기서 얘기는 이렇게 된다. 우선 이곳에 사는 우리는 우리의 기대수명을 모른다. 젊을수록 그렇다. 우리는 우리가 얼마의 여명을 기대해도 좋을지 계속 모를 가능성이 크다. 사는 동안 자꾸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는 어떨지 모르나 당장은 고된 게 청춘이라고 한다. 저성장과 취업난 탓에 유독 더 큰 고통 받는 한국의 20,30대에겐 그 의미가 남다른 말일 것이다. 어쩌면 영영 고되게 살다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끼쳐오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더 가혹하게도 그들은 가장 이른 나이에 ‘노후 대비’에 내몰리고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 블랙 코미디 같은 얘기다. 취업 시기는 갈수록 늦어져, 같은 시기 소득이 이전 세대보다 줄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 이전 세대가 당연히 준비했던 것들로부터 소외될 징후마저 보이고 있다. 수십 년간 기성세대에겐 노후 대비의 기본 수단으로 통용되던 ‘연금 보험’도 그 중 하나다.

물론 국민연금이 있다. 그러나 은퇴 뒤 평생 소득의 약 40% 정도만을 받을 걸로 기대되는 상황이다. 공적 연금만으론 누가봐도 충분한 노후 대비가 어렵다. 그래서 정부도 연말 세액 공제라는 유인책을 써가며 사적 연금을 장려해 왔다. 이런 이유로 지금까지 ‘연금 보험’엔 꾸준히 가입자가 몰렸다. 2012년 전 국민의 15.7%가 가입했는데, 2015년엔 17.6%로 최고치를 찍었다.

하지만, 지난해 17.1%로 이 수치가 처음 감소했다. 2017년 현재 20,30대의 진입 유보 혹은 이탈이 큰 이유였다. ‘연금 보험’ 20,30대 가입률은 2014년 20.3%였다. 부모가 들었든, 직장 상사 권유로 새로 가입했든, 다섯 중에 한 명은 노후 사망 때까지 개인적으로 받을 연금이 있었단 얘기다. 하지만, 이 수치가 2015년 19.6%로 떨어지더니, 지난해 18.1%까지 추락했다는 얘기다. 2014년과 비교하면 전 연령에서 0.4%p 연금 보험 가입률이 줄어드는 동안, 청년층은 약 5배나 감소폭이 컸던 것이다.
여력 없어 연금 보험 해지하는 20,30세대
여력 없어 연금 보험 해지하는 20,30세대
이달 초, 취재를 위해 만난 34살 직장인 P도 연금 보험을 해지한 30대 가운데 한 명이었다. 지난달까지 2년간 매달 50만 원씩 꼬박꼬박 불입해서 모인 돈이 1,600만 원이었다. 해지 때는 그동안 받은 세액 공제 혜택을 반납해야 하기에, 돌아온 돈이 1,320만 원에 불과했다.

그녀의 직장생활 경력은 8년. 남편과 맞벌이로 서울에 24평형 아파트를 얻자마자 생긴 일이다. 게다가 둘째까지 출산하게 되자, 대출금 이자를 충당할 수단으로 가장 눈에 띄는 게 연금 보험이었다. 연금은 멀고 이자는 가까웠다.
여력 없어 연금 보험 해지하는 20,30세대
P가 살아가는 오늘도, 현대 과학의 진화 속도는 기하급수적이다. 속도는 속도마저 혁신하기에, ‘생명 연장’ 연구엔 예측 못할 정도로 가속도가 붙을 걸로 보인다. <호모 데우스>에서 저자는 모두가 120세가 되는 세상이 생각보다 빨리 온다고 자신 있게 논증해 놓은 뒤, 이렇게 묻고 있다. ‘그때 가서 우리가 우리를 위해 구축하려 애쓴 것들은 우리를 보호할 수 있을 것인가?’ 일부일처제 같은 규범은? 전쟁과 계급투쟁, 타협으로 이룬 복지국가란 제도는?

2017년 한국의 30대 P는 유능하고, 경제 사정이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P보다 조금 늦게 태어나 더 극심한 취업 경쟁에서 뒤처진 뒤, 소득을 더 늦게 가진 사람은 어떨까. 연금 보험은 가입조차 엄두를 내기 힘들 것이다. 출산과 내 집 마련 과정에서 해지 유혹은 만만찮을 것이다. 30대 보다 20대가 더 그럴 것이다.

‘연금 보험’에서 일어나는 이탈과 가입 주저 현상은, 청년층 노후 대비에 빨간 불이 켜진 징후로 보기 충분하다. 그들은 앞으로 100년, 그 이상을 더 살 수도 있다. 미래가 만약 디스토피아에 가깝다면, 사회문제의 한 축이 여기서 싹트고 있는지도 모른다.
 
● 사적연금으로서 연금보험은?

‘연금 보험’ 가입률에 주목할 필요는, 현재 국내 연금시장 비율을 알고 나서 보면 더 이해하기 좋다. 지금 국민연금과 사적연금은 적립금 규모 비중이 55:45 정도다. 연금 보험이 전체 사적연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7% 수준이다. 지난해 현재 전체 연금보험 가입자 수는 880만 명가량이다. 

'연금 보험' 혹은 '개인 연금 보험'이란, 정부가 최대 400만 원까지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연금저축보험’과, '그 밖의 연금보험 상품'을 통칭한 용어다. 세액 공제 혜택을 기준에 따른 분류이다.  

'세제적격'인 연금저축형계좌(펀드, 신탁, 보험 등)로서 연금 보험의 경우, 사회 초년생이 주로 가입한다. 연간 불입 금액의 400만 원까지 16.5%(연소득 5,500만원 기준. 그 이상은 13.2%) 세액공제 혜택이 있기 때문이다. '연금저축형계좌'에서 보험 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74%다. '그 밖의 연금보험 상품'엔 이런 혜택이 없지만, 10년 이상 유지하면 이자 소득에 과세를 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예금 금리가 매우 낮은 상황에서 세액 공제 혜택 등을 고려할 때, '세제적격' 상품으로서 연금저축계좌에 해당하는 연금보험 상품은 가입하는 게 유리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보험개발원 측은 "수익률도 중요하지만, 연금 보험은 미래 기대 수명이 계속 늘어나는 상황에서 사망 시 까지 보장한다는 게 최고 장점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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