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습기 살균제 사태로 촉발된 '케미포비아'
'케미포비아'란 화학을 의미하는 '케미컬(Chemical)'과 혐오를 뜻하는 '포비아(phobia)'가 합쳐진 말입니다. 생활화학제품에 대한 불신·공포감을 느끼는 현상을 의미하는데 국내에서는 지난 2011년 논란이 됐던 '가습기 살균제 사태' 이후 이 단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됐습니다.
사단법인 소비자시민모임이 지난해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대해 알고 있는 소비자 49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생활화학제품의 안전성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 전체 응답자의 87%에 달할 정도였습니다. 열 명 중 아홉 명 가까이 믿지 못하겠다고 답한 겁니다. 또 응답자의 69.2%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후 천연재료나 친환경 제품을 사용하려 한다"고 답했습니다.
케미포비아가 확산되면서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는 검사 결과가 나와도 소비자가 이를 믿지 못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외국의 한 소비자 잡지가 피앤지(P&G)사의 기저귀 일부 품목에서 다이옥신과 살충제 성분이 검출됐다는 검사 결과를 보도했습니다.
한국피앤지 측은 기저귀에서 발견된 화학 성분이 극미량이고 유럽 안전 기준에도 못 미쳐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았습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국내 유통 중인 모든 기저귀에 대해 전수 조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 "생활화학제품 다 못 믿어"…케미포비아 왜 생기나?
사람들의 불안이 케미포비아로 극대화돼 나타나는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소비자의 신뢰 하락'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정부의 인증을 거친 제품도 안전하지 않을 수 있는데다, '피해'가 발생한 사후에야 문제점이 드러나기 때문에 소비자의 신뢰는 더 떨어지고 공포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 소비자 불안감 해소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동안 잠잠했던 케미포비아가 다시 확산할 조짐을 보이면서 정부와 기업 차원의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화학제품 허가 단계부터 평가 제도 전반을 보완하고 제품군 별로 평가 방식도 다양화하는 등 근본적이고 구체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더불어 기업과 정부가 소비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적시에 제대로 제공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특정 제품에 유해 성분이 검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상에 올라오는 불명확하고 왜곡된 정보가 소비자들 사이에 공포심을 조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