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취향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한국에 사는 다른 대부분의 관객들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요? 적어도 한국 시장으로까지 건너온 미국 상업영화는 대부분 그랬던 것 같습니다. ‘문라이트(Moonlight)’는 등장인물이 모두 흑인인, 제가 본 첫 극 영화입니다. 그것만으로도 무척이나 신선했다고 고백한다면, 좀 촌스럽게 들릴까요?
흥미로운 건 맥크래니와 젠킨스가 모두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마이애미 리버티시티라는 곳에서 자랐다는 겁니다. 리버티시티는 주민의 95%가 흑인인, 대표적인 흑인 밀집 거주지역입니다. 30대인 둘은 학창시절 서로를 알지는 못했지만, 같은 학교를 다녔고 부모가 마약중독자란 것도 공통점이라고 합니다.
“맥크래니는 마이애미의 저소득층 주거단지에서 자라는 가난한 흑인 소년의 삶이 어떠한지를 훌륭하게 포착해냈다. 맥크래니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빌려 내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스크린에 쏟아낼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맥크래니와 내 어린 시절의 뿌리는 동일하다.”는 젠킨스의 말은 이들의 공통된 성장배경을 알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은 흑인 남성이고 성 소수자입니다. 가난했고, 싱글맘인 엄마는 마약중독자였습니다. 남성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그의 정체성과 환경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 요소가 미국 사회에선 ‘약점’입니다. 아니, 남성이라는 점조차 성 소수자인 그에겐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폭력성을 강화하는 요인이 됐습니다.
그런 속에서 나답게 산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그래서 소년의 성장기는 나다운 게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여정인 동시에 나답게 살기 위한 투쟁의 기록입니다. 훌륭한 다른 많은 영화들이 그러하듯이, 이 영화 또한 그것이 비추는 현실은 (주류의 시각에선) 극단적이고 특수할지라도, 그것이 그리는 가치와 정서는 지극히 보편적인 것입니다.
나다운 게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여정은 외롭습니다. 나답게 살기 위한 투쟁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배리 젠킨스 감독은 그 길 위에서 지쳐 힘들어하는 모든 이들에게 응원을 건넵니다. “세상이 당신을 밀어낼 때 당신 안의 강인함을 찾으세요.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진실된 자신은 언제나 당신 안에 있습니다.”라고. 미처 생각지 못했던 방식으로 건네는 응원이라, 더 반갑습니다.
(사진=영화 '문라이트'/제공=오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