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들의 정치 참여는 정책 생산 과정에 전문성을 반영할 수 있습니다. 정부에서 일하고 돌아온 교수들은 책에 없는 생생한 지식을 학생들에게 전해줄 수 있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습니다. 대학교수는 최고의 전문가 그룹으로 상아탑에서 갈고 닦은 전문적 지식을 현실 정치에 접목해 실현하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도 교수들을 두뇌 집단으로 이용하기도 합니다.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1970년대와 1980년대에도 군사 독재 정권에 참여해 권력을 미화하고 정당화하는데 부역했던 ‘어용 교수’가 지탄의 대상이 됐습니다. 참여 경로는 다르지만 지금의 폴리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국정농단 게이트에 연루돼 구속기소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성균관대)이나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한양대),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홍익대)과 학생들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김상률 전 대통령비서실 교육문화수석(숙명여대)도 모두 교수 출신입니다.
폴리페서가 대거 정권에 참여한 것은 따지고 보면 노무현 정부 때였습니다. 민주 투사형 정치인들이 대거 정권의 주도권을 잡으면서 전문성을 내세운 교수들이 대거 정부에 참여했고 특히 지방대 교수들의 약진이 두드려졌습니다. 경북대 교수를 하다가 노무현 정권에 참여한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한 칼럼에서 “학자들이 나서지 않으면 개혁은 요원하다”며 폴리페서 옹호론을 펴기도 했습니다.
지식인의 현실 참여는 필요하지만 이를 이용한 기회주의적 행태가 문제입니다. 학자로서의 전문성이 자칫 곡학아세(曲學阿世)의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합니다. 정치권을 기웃대며 한자리를 얻는 것이 목표가 돼버리면 연구와 교육은 뒷전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교수직을 유지한 채 끊임없이 입신양명의 기회를 노리는 교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일부 대학의 경우는 교수가 정계로 진출을 해 선출직이나 고위 관료에 오르면 그 대학의 위세를 확장하고 각종 정부 지원을 받는 기회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유독 정치인 출신을 특임이니 석좌교수니 하는 타이틀을 많이 주는 대학일수록 그렇습니다.
따라서 대학과 정치판 사이를 오가는 기회주의적인 폴리페서를 막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합니다. 총장과 학장·교수·부교수·조교수가 정치 활동을 하거나 정무직 공무원으로 기용될 경우 교수직을 내려놓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 실현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관련 법안도 국회에서 잠자고 있습니다. 지난 2012년 말 제18대 대통령 선거 기간에도 500명이 넘는 교수가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후보 캠프에 몰려들었다가 흩어졌지만 이들 가운데 교수직을 마지못해 내려놓은 사람은 당시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가 유일했습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미국은 교수가 선출직에 진출할 때 휴직 기간이 2년이 넘으면 사표를 내야 합니다. 사표를 냈던 교수가 공직을 마치고 강단으로 복귀할 때는 엄격한 심사를 받도록 하고 있습니다. 일본 역시 국회의원이나 장관 등에 나설 때는 교수직을 내놓는 것이 관례입니다. 휴직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승인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서울대의 경우 교수가 장관 등 정무직으로 진출할 경우 사표를 내도록 규정을 고치기도 했지만 대부분 대학은 아직 손을 놓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교수가 국회의원에 당선되거나 정무직 공무원에 임명되면 사직하게끔 하는 이른바 ‘폴리페서 금지법’을 조속히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학 본연의 교육과 연구 활동을 보장하고 기회주의적 폴리페서를 차단하기 위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