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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세월호 참사' 다룬 장편 영화 나온다 - 원작자 김탁환 작가·오멸 감독 인터뷰

故김관홍 잠수사는 지난 6월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자신을 주인공으로 써 내려간 ‘거짓말이다(김탁환 저, 북스피어)’가 곧 출간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끝내 읽지 못했다. 작가 김탁환 씨가 세월호 참사 이후 김 씨와 그의 동료 잠수사들이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었다. 책은 여럿에 읽히고 회자됐다. 덕분에 민간잠수사들이 맞닥뜨린 비참한 현실에 대해 알게 됐다고 말한 사람들이 늘었다. 생전 김 잠수사가 그렇게도 바랐던 일이었다. 김탁환 작가는 저자 인세 전액을 세월호 진상 규명 활동을 위해 기부했다.
생각해 보니 2014년엔 봄꽃을 즐긴 적이 없네요. 그 봄에는 오직 잠수하여 선내로 진입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꽃봉오리가 맺혔는지, 꽃이 피는지, 누가 꽃 아래로 걷고 멈추고 앉는지, 꽃가지를 꺾어 거실 꽃병에 꽂아 두는지, 또 누가 시들어 가는 꽃을 밟으며 지나가는지 몰랐습니다. 이런 마음이었습니다. 꽃봉오리가 맺히면 뭐하누 사람이 이리 죽었는데, 꽃이 고우면 뭐하누 사람이 이리 죽었는데, 꽃이 지면 뭐하누 사람이 이리 죽었는데...(중략)

상상은 전부 달랐습니다. 저는 실종자들이 침몰한 배에 승선하기 전에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 구체적으론 몰랐고 지금도 모르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을 품에 안고 나오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얼마나 제각각 다른 존재인지 압니다. 키나 몸무게는 물론이고, 똑같은 자세로 최후를 맞은 이는 한 사람도 없으니까요. 극심한 공포와 목숨이 끊어지는 마지막 순간에도, 마지막 순간일수록, 그 사람은 오롯이 그 사람인 겁니다. 그 차이를, 그 유일무이한 특별함을, 잠수사는 만지고 안고 함께 헤엄쳐 나오며 아는 겁니다. 인간은 결코 숫자로 바뀔 수 없습니다. 바지선에서 철수한 뒤 제가 가장 듣기 싫었던 질문은, 너는 몇 명이나 수습했냐는 겁니다. 제게 중요한 것은 수습한 숫자가 아니라 선내에 남아있는 숫자였습니다. 
(소설 '거짓말이다' 본문 pp.112~113)

소설 속 이야기는 곧 영화로 만들어진다. '거짓말이다'의 영화화를 결심하고 작가의 동의를 얻은 사람은 오멸 감독이다. 제목은 김 잠수사의 생전 별명이었던 ‘바다 호랑이(가제)’로 알려졌다. 영화는 내년 여름부터 촬영을 시작한다.

* 오멸 감독은 제주 4.3 사건을 다룬 영화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013)’로 국내 최초 미국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지슬'은 최근까지 최다관객 기록(14만4490명)을 보유한 독립영화였다. 빼어난 영상미와 참신한 스토리텔링으로 극찬을 받았다. 무엇보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남달랐다. '신위, 신묘, 음복, 소지'에 이르는 제사의 4가지 형식을 빌린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영화는 희생자의 진혼을 위해 만들어졌다. 실제 '지슬'을 본 많은 사람들이 영화가 제작되고 상영된 과정이 일종의 '위령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영화 '지슬(오멸 감독·2013)'
지난 7일, 소설 '거짓말이다'의 원작자 김탁환 작가와 한창 시나리오 각색 작업 중인 오멸 감독을 함께 만났다. 자리엔 없었지만 두 사람을 이어준 매개가 된 故김관홍 잠수사는 1시간 가까운 대화 내내 가장 많이, 자주 등장한 주인공이었다. 그러니 실은 세 사람이 함께 한 인터뷰였다. 해양 잠수사, 작가, 영화감독. 독특한 인연의 생면부지(였던) 타인들.  
오멸 감독(좌)과 김탁환 작가(우)
기자 : 김탁환 작가가 오멸 감독이 '거짓말이다'를 하게 됐다는 소식을 알려왔을 때, 잘 하셨다고, 좋은 선택이라고 말한 기억이 난다. 아마도 오 감독의 전작을 본 사람이라면 기자와 같은 판단일 거다. 세월호를 주제로 영화를 만든다는 다소 어려우면서도 조심스러운 과제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결정하게 된 건지?

▶ 김탁환 :  '거짓말이다'를 올해 8월 초에 냈다. 그리고 감독님이 연락을 해 오셨다.

▷ 오멸 : 이 영화 같이 제작하게 된 선배님이 좋다고 추천해 읽는데, 그 날 한 백 페이지쯤 읽었나, 무조건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부랴부랴 작가님께 연락드리고 9월 달에 같이 만났다.

▶ 김탁환 : 그날 만나서 술을 마셨다. 이전에도 감독님 영화 '지슬'을 본 적 있었는데 이번에 한 번 더 봤다. 최근 나온 '눈꺼풀'이라는 영화도 보고. 감독님 영화들을 보고 나니 책을 (영화로) 잘 만들어 주실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기자 : 8월에 책이 나왔는데 9월에 원작자와 만난 거면. 결심이 빨랐다.

▷ 오멸 : 작가님이 유명한 건 알고 있었지만, 예전에 재미있게 본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도 작가님이 원작자인 줄 몰랐다. 가끔 어떤 사람이나 물건을 만날 때 운명같은 걸 느끼는데, 살다보면. 이 책이 그랬다. 작가님과 만나서 얘기를 나누는데 아, 같이 작업하는 장르가, 서로 사용하는 붓이 다른 것일 뿐, 인연이 있는 사이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기자 : 다른 감독들의 제안도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오멸 감독을 선택한 이유는 뭐였나?

▶ 김탁환 : 책을 낼 때부터 이런 책 내도 괜찮나, 주위에서 걱정을 했다. 요즘도 전국 강연회를 다니면 독자들 꼭 질문이 그거다. 외압은 없었느냐. (웃음) 그런 우려를 갖게 하는 책이다. 그러니 나 역시 언젠가 누군가 이 책을 영화화한다고 나올 수도 있을 테지만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1년, 최소한 1년 정도는 있어야 콜이 와도 오지 않을까 이런 생각 했다. 그런데 너무 빨리 바로 와서 되게 놀랐고, 그렇게 바로 연락한다는 건 주위의 상황이나 이런 것보다도 이 작품이 아주 강하게 끌린다는 방증이니까. 무엇보다 이런 내용을 영화로 만들려면 세월호 사건을 역사적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그러면서도 슬프지만은 않게 그릴 수 있는. 내가 자주 쓰는 용어로는 '독하고 아름다운 사람'. 그런데 오 감독이 다행히 그런 사람이었다.

기자 : 오멸 감독은 이전에도 세월호에 대한 영화를 만든 적 있다. 세월호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

▷ 오멸 : 배(세월호)가 가라앉는 걸 뉴스에서 보고 한동안 멍하니 지냈다. 뭐라도 해야지 싶어 3일 후에 시나리오를 써서 '눈꺼풀'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올해 상반기에 세월호에 대한 시나리오를 하나 더 쓰고 있었다. 그런데 더 못 들어가고 있었다. 무슨 말이냐면, 유족 분들이나 관련된 사람들 개개인의 삶에 밀접하지 못하고 계속 밖에서, 약간 관객처럼 서 있을 수 밖에 없는, 저 깊은 속에 들어가서 무언가 손을 뻗어 이야기를 끌고 나와야 하는데 용기가 부족했고 뭔가 어려웠다. 세월호 이야기를 어떻게든 해 보려고 발버둥치고 있었는데 그게 쉽사리 풀리지는 않고 있던 상태였다. 그러던 차에 '거짓말이다'를 읽게 된 것이다.

* 오멸 감독이 세월호 참사 직후 만든 영화 '눈꺼풀(2015)'은 함축적이고 은유적인 작품이다. 줄거리는 이러하다. (시공을 알아채기 어려운 상상의 섬) '미륵도'에 홀로 살고 있는 노인은 바깥 세상을 멀리하며 자급자족한다. 배를 타고 낯선 이들이 도착하면 손수 하얀 찹쌀로 떡을 해 먹인다. 떡을 받아든 사람들은 유령처럼 사라진다. 섬은 일종의 죽음의 관문, 이승과 저승의 경계인 것이다. 그날도 낚싯배를 타고 선생님과 학생들이 도착한다. 노인은 아이들에게 떡을 만들어 먹이려 하지만 절구는 부러지고 우물물은 더러워진다. 떡을 기다리는 해맑은 학생들을 보며 노인은 오열하고 분노한다. '지슬'과 마찬가지로 '눈꺼풀' 역시 망자를 향한 진혼의 성격을 갖는다. 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소개는 서울아트시네마 블로그 글(http://trafic.tistory.com/1231)로 갈음한다
영화 '눈꺼풀(오멸 감독·2015)'
기자 : '거짓말이다'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나?

▷ 오멸 : 탁한 눈을 확 걷어내는 기분이었다. 물 안에 가라앉은 배에서 보면 부유물들이나 이런 것들이 탁하지 않나. 진실을 가린 것처럼. 그런 내 눈을 가리고 있는 것들을 확 걷어내준 느낌. 책이 그동안 다들 무심하거나 접근하지 않았던 세계에 날 데려가줬다. 여러 번 울컥했다. 이 책이 바이블이다, 나에겐. 세월호를 바라보는.

기자 : 가장 공들여 촬영해야겠다고 생각한 대목이 있나?

▷ 오멸 : 단연코 잠수사가 수심 40m가 넘는 물에 들어가 실종자의 시신을 만나는 과정이다. 그 안에서 한 인간이 느끼는 공포나 두려움, 절망감, 그리고 시신과 나누는 대화들. 절망적인 공간에서 나누는 대화이기 때문이다. 시신을 수습하는데 그걸 또 한 가닥의 희망이라고, 실종자 가족들은 밖에서 기다리시는 거 아닌가. 죽음의 저 바닥 밑에서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고, 그걸 희망이라고 간절하게 바라는 실종자 가족들의 이야기.

"찾았습니다." "찾았어?" "네. 방금...... 침대에......실타래......" 말들이 엉켰고 류 잠수사가 끼어들었습니다. "경수야! 야, 인마!" 제 이름을 고함치듯 부르더군요. 그 소리에 눈물이 뚝 멈췄습니다. "정신 똑바로 차려. 이 새끼야! 뒈지기 싫으면 뚝 그쳐. 자신 없으면 위치만 확인하고 나와." "아닙니다. 모시고 나가겠습니다." "질소 마취가 온 건 아니고? 어지럽거나 멍하진 않아?" "아닙니다." ...  손을 뻗어 실종자의 상태부터 확인했습니다. 목과 어깨와 가슴과 배 그리고 허벅지를 따라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기울어진 침대 모서리에 등을 기대듯 똑바로 섰습니다. 침대 사이에 왼팔이 끼어 있었습니다. 시신을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 셈입니다. 저는 오른손을 그 틈으로 넣으려 했습니다. 처음엔 엄지 하나도 들어가지 않더군요. 왼손으로 침대를 잡고 당기며 다시 오른손을 넣자, 엄지와 검지가 들어갔습니다... 다시 실종자의 몸을 더듬었습니다. 무릎과 허리 그리고 가슴에 이르렀을 때, 왼 가슴에서 무엇인가가 잡히더군요. 헤드랜턴을 가까이 대니 희미하게 이름이 보였습니다. 종후, 윤종후였습니다. ... 저는 종후의 뺨에 제 오른손을 가만히 댔습니다. 그리고 부탁했습니다. "종후야! 올라가자. 나랑 같이 가자."              
(소설 '거짓말이다' 본문 pp.112~113)

기자 : 책으로 돌아와서. 김탁환 작가는 왜 김관홍 잠수사의 사연을 책으로 낼 생각을 했나. 집필 계기는?

▶ 김탁환 : 팟캐스트를 진행하면서 유가족들을 많이 뵀다.
(* '거짓말이다'를 집필하기 전, 김탁환 작가는 팟캐스트 방송 '4·16의 목소리'를 진행했고, 그 과정에서 세월호 유족 등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김관홍 잠수사도 팟캐스트 방송을 통해 만난 인연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슬프고 힘들고 울고 감정이 출렁이는데, 쓰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이미 그 슬픔을 이야기한 책들이 세상에 나와 있는데 나까지 그 슬픔을 얹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 김관홍 잠수사를 만나서 들은 이야기는 달랐다. 관홍을 통해 침몰선 안으로 들어가 시신을 발견해 모시고 나오는 과정을 처음 들었는데, 이건 꼭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이 김탁환 작가는 '구상부터 출간까지 최소한 3년은 집중한다는 원칙을 깨'고 '거짓말이다'를 집필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려 주는 김관홍이라고 하는 사람 자체가 갖고 있는 여러가지 면모들도 책을 써야겠다 결심한 계기가 됐다. 이 친구가 마음이 너무 여린거다. 그러면서도 잠수사로서 자신의 전문 영역에 있어선 집요함이 있다. 포기하지 않으려는 모습도 보이고. 그 두 가지가 왔다갔다 하는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유가족들, 416 연대 쪽과 만나는 유일한 잠수사였고. 대중들 앞에 나서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게 굉장히 외로워보이더라. 그래서 '너 니가 지금 가고 있는 그 길이 도대체 무슨 길인지 아느냐.' 물어보면 자기도 잘 모르겠대. 다른 잠수사들과 다르게 가고 있는 건 맞는데, 멈출 순 없고. 그래서 가긴 가는데 결말이 어떻게 날지는 자기도 잘 모르겠다고. 소설로 치면 '문제적 인물'이라고 할만한 캐릭터였다.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쓰자. 끝을 알 수 없는 이 사람의 이야기를 쓰자.
기자 : 그런데 현실에서 관홍 씨가 선택한 결말은 충격적이었다. 지켜본 사람으로선 황망했다. 

▶ 김탁환 : 그렇게 결말이 날 줄은 몰랐다. 그것만 제외하고 나머지는 다 생각했던 건데. 그것만 제외하고.


류 잠수사의 목소리가 무척 떨렸습니다. "오늘부터 피고인이란다. 참고인에서 피의자로 바뀐 것도 기가 막힌데, 이제 피고인이래." 나중에 국어사전을 찾아봤습니다. "피고인: 형사 소송에서, 검사에 의하여 형사 책임을 져야 할 자로 공소 제기를 받은 사람.' 국가에서 위임을 받은 검사가 류창대 잠수사에게 형사 책임을 묻기로 한 겁니다. "오늘 공소 제기를 했대. 업무상과실치사.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아야 한대"..."그 책임을 왜 형님이 집니까? 형님이나 우린 나라에서 못 하는 일 대신 가서 열심히 한 죄밖에 없습니다...." "정수야! 하나만 묻자. 바지선에서 내가 '감독관'으로 불린 적 있어? 내 기억엔 그런 직책을 맡은 적이 없는데, 저 사람들이 자꾸 나를 감독관이라고 하네."
(소설 '거짓말이다' 본문 p.212)

"많이 안 좋아?" 최 잠수사가 별일 아니라는 듯 답했습니다. "다른 덴 괜찮은데, 투석을 해야 한답니다." 괜찮은 게 아닌 겁니다. 심해 잠수사가 투석을 한다는 것은 더 이상 잠수를 할 수 없단 뜻입니다. 몇 달씩 바다에 머무는 경우가 보통인데, 투석 때문에 병원을 오갈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잠수 때문에 신장이 나빠진 것이라면 더더욱 안 됩니다. ..."보상은 알아보셨습니까?" "전화를 걸어 물어는 봤는데, 전부 어렵단 소리뿐이야. 특별법에 잠수사는 들어 있지도 않다 하고, 산재 처리도 불가능하고." "평생 투석을 하셔야 하는데, 이 나라에선 치료비를 전혀 지원하지 않겠단 건가요?" "우리가 순진했어. 믿을 걸 믿어야 하는데... 남 탓할 것 없어. 우리가 멍청했던 거야." 
(소설 '거짓말이다' 본문 p.316)

기자 : 민간잠수사들이 겪은 일 자체도 충격적이지만, 그들을 통해 세월호 참사라는 거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과제이다. 너무나 많은 주체들이 가해자로 참여한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재앙 아닌가. 소설은 잠수사의 이야기에 한해 디테일하게 들어간 케이스인데, 영화는 어느 부분에 집중하게 되는 건지. 원작과 마찬가지로 전개되는 건가?

▷ 오멸 : 김관홍 잠수사라는 사람이 이미 세월호 아닌가 생각한다. 분리해서 생각해선 안 된다. 그 당시에 아이들 구하러 순순히 물 속으로 들어갔던 민간 잠수사들도 세월호에 뒤늦게 탑승한 분들이다. 잠수사들이 물 속에서 머리핀 하나를 들고 나왔는데, 그 머리핀이 단순한 머리핀이 아니지 않나. 잠수사와 관련된, 그들이 겪은 모든 사연들이 세월호와 관련돼 있고 참사의 본질을 관통하고 있기 때문에 영화도 다른 이야기, 다른 시점으로 나올 여지가 없다고 본다.
김탁환 작가
기자 :세월호 사건이 본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어떤 사건인가, 두 사람에겐?

▷ 오멸 : 나의 경우 알려진대로 내 지역 사회의 문제들, 제주의 역사들을 영화로 만들었다. 내 삶의 이야기가 거기에 묻어 있기 때문에. 그런데 세월호를 만나면서 세월호가 침몰하던 날, 그렇게 가슴이 아플 수가 없었다. 이 감정이 뭘까. 내가 아직 이 나라를 아끼고 있구나. 이 나라 국민이었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해야 하나. 그 날 없던 애국심이 생겨난 것 같다. (있었던 걸 세월호를 계기로 확인한 것 아닐까) 그럴 수도. 그 후로 오랜 시간동안 마음이 뜨거운 상태로 지냈던 것 같다.

▶ 김탁환 : 작가이자 개인으로 살면서 두 세번 정도 큰, 자기 인생을 휘청하게 하는 사건들을, 그게 역사적 사건이 됐든 개인적인 사건이 됐든 그런 것을 겪는다고 했을 때, 생각을 해 보니 내가 87년도에 대학 들어갔는데 그때 내가 보고 겪었던 것이 그랬다. 그리고 세월호가 두번 째인 것 같다. 왜 이렇게까지 충격을 받았나 생각해 보니 이제 내 나이도 이미 40대 들어섰고, 그러면서 내가 맡은 일 하고 있는 일은 열심히, 꼼꼼하게 하면서도 나머지 것들에 대해선 대충 생각했던 것 같다. 대충. 민주공화국이겠지, 하는 그런 거 있지 않나. (세상이 어느 정도 어련히 알아서 잘 돌아가겠지) 맞다. 그런 거다. 나라 수준이 올라가니까 다 알아서 잘 돌아가고 있겠지, 대충 어렴풋이 이해하고 있었는데 그 '대충 모호하게 뭔가를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 아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확 든 거다. 실은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거다. 팟캐스트를 진행하면서 유가족들을 여러 분 만났는데 이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더라.

내 가족, 내 직장, 이런 데엔 굉장히 꼼꼼하게 잘, 이렇게 하고 있었지만 나머지는 다 대충이었다. 우리 모두가 다 그렇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사고가 나고 보니 그게 아니지 않았나. 그러니까 늦었지만, 실은 굉장히 늦었지만, 정확하게 알기 위해 노력하는 것들이 중요하단 걸 알았다. 그래서 세월호를 계속 들여다 보면서 알아야겠다는 생각도 간절하고. 2년 넘게 여러 사람이 파고 있지만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모르는 게 많고. 그래서 작가로서 내 스스로를 각성시키는 거다. 지난 20년동안 해오던 패턴들이 있었는데, 내 삶의 패턴들이 다 깨진 사건이다. 나도 이런 상황이 당황스럽고, 그런데 한편으론 지금이라도 다행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세월호 이후 내 삶이 분명 달라졌는데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나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오멸 감독
기자 : 수중 촬영이나 제작비 조달같은 현실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원작 자체가 갖는 힘, 톤을 화면에 구현해낸다는 게. 사건이 현재 진행중이라는 점에서도. 여러 모로 어려운 과제이다. 고려해야 할 것도, 고민할 것도 많고. 이전 영화들과는 마음가짐이 다를 것 같다.

▷ 오멸 : '지슬'을 찍을 때 혼자 매일 시나리오를 쓰면서 하루도 안 빠지고 조깅을 했다. 그 때 그런 생각을 했다. 이건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이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느냐, 안하느냐 같은 문제와 차원이 다른 것이라는. 이번 영화도 그런 심정으로 해야하는 작업이 아닐까. 누군가의 생사를 다루는 이야기이고, 여전히 아주 밀접돼 있는 분들이 눈물을 흘리고 계시기 때문에. 지슬 때 만큼이나, 그 이상의 각오로 해야 하는 작업이다.

▶ 김탁환 : 소설 쓸 때도 그랬다. 책이 나오면 민간잠수사 분들이 읽을 거다. 그리고 세월호 유가족들도. 그 분들이 읽고 아니야, 왜 이렇게 형편 없어. 이런 얘기 들으면 안 되니까. 물론 다른 일반 독자들도 있지만 일단 그 당사자 분들이 보고 납득하셔야 하니까..

▷ 오멸 : 조깅할 때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더 속력을 내서 뛴다. '지슬'이 처음 나왔을 때, 부산에서 첫 상영을 하고 그날 밤에 갑자기 관절 쪽에 통증이 온 거다, 아무 이유없이. 새벽 4시에 혼자 걸어서 부산 해운대 24시간 병원을 찾아서 진통제를 맞았다. 첫날 상영까지 몸이 그렇게 긴장이 돼있던 걸 나도 몰랐던 거다. 아마 '거짓말이다' 때 김탁환 작가도 그런 과정을 모두 경험한 뒤 내놓은 책일 거다. 내가 작가님이 건넌 그 강을 뒤에서 나중에 건너고 있는 건데, 지금은 솔직히 가시넝쿨 앞에 서 있는 기분이다. 그런데 일단 들어가면 5m 앞이 될지, 100m 앞이 될지 모르지만 분명히 길이 나온다는 건 알고 있다. 그래서 그냥 이렇게 걸어가면 되는 것 같다. 혼자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상황들이 오면, 그럴 때는 자연에 의지하기도 하고. 종교인은 아니지만 하늘에 의지하기도 하려 한다. 이 영화는 나의 의지만으로 완성될 영화는 분명히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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