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18일, 2015학년도 이화여대 체육특기자 전형 면접고사가 열린 이화여대 이화-포스코관. 보름 전 막을 내린 인천아시안게임 한국대표단의 단복을 입은 한 여성이 면접 고사장 앞에 있었다.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면접장 안으로 들어간 여성은 손에 들고 있던 무언가를 탁자에 올려놓고는 5명의 면접 위원에게 말했다. “제 딴 금메달을 보여드려도 되나요?” 이 일화의 주인공은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였다.
이화여대는 면접고사장에 수험생이 물품을 휴대해 입장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지만, 정유라 씨에게 이런 규정은 있으나 마나였다. 정 씨가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고사장에 들고 갈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하자, 이대 측은 허락했다. 특혜 입학의 적나라한 한 단면이었다.
당시 입학 전형을 총괄한 이화여대 입학처장은 남궁곤 정치외교학과 교수였다. 정 씨의 면접고사장 금메달 반입을 허용한 장본인이다. 남궁 처장은 더 나아가 면접 전 면접위원들에게 “수험생 중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가 있으니 뽑으라”고 당부했다. 면접 응시자 중 아시안게임 금메달 리스트는 단 한 명, 정유라 씨 밖에 없었다. 정 씨를 염두에 둔 지시로 풀이될 수밖에 없는 대목이었다.
● 정 씨 특혜 입학으로 불합격 된 이들
하지만 면접위원 5명 가운데 이런 문제를 지적한 이는 한 명도 없었다. "금메달리스트를 뽑으라"는 남궁곤 처장의 지시를 착실히 이행했다. 이를 위해 교수들은 면접관으로서, 나아가 교수로서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자행했다. 점수를 의도적으로 조작해, 합격권에 있던 다른 학생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교육부의 이화여대에 대한 감사 결과에 따르면, 체육특기자 전형 면접 고사에 올라온 사람은 22명. 이 중 정유라 씨의 서류 점수는 22명 중 9등이었다. 정유라 씨 보다 서류 점수 상위에 있던 1명은 면접에 불참했다. 정 씨는 6명을 뽑는 체육특기자 전형에 합격이 힘든 상황이었다. 정 씨는 어떻게 합격했을까. 당시 면접위원들은 정 씨에게 면접 최고점수를 줬다. 그리고 정 씨보다 서류점수가 높았던 2명에겐 의도적으로 낮은 점수를 줬던 것으로 확인됐다. 교육부 감사 결과, 면접위원들은 이들 2명의 수험번호를 호명해가면서 누구에게 낮은 점수를 줘야 하는지 확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 '과제물도 대신, 시험도 대신'…"교수가 비서"
정 씨에게 대학 생활은 입학보다 더 쉬웠다. 아니 대학 생활을 사실상 전혀 하지 않았지만, 학점은 빠짐없이 받았다.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갖가지 특혜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화여대 건강과학대학 체육과학부 15학번 정유라 씨는 입학 이후 올해 여름 학기까지 수강한 과목 중 8과목의 수업에는 단 한 번도 출석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화여대의 공식 기록으로는 단 한 차례의 결석도 없었던 것으로 돼 있다. 결석 사유서 등 증빙 자료도 제출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각 과목 교수들은 정 씨의 출석을 모두 인정해줬다. 한 차례의 출석도 없었지만, 학점을 받았고, 성적 또한 나쁘지 않았다.
올해 여름 학기, 의류산업학과 이인성 교수가 개설한 '글로벌융합체험 및 디자인 연구' 과목. 직접 옷을 만들어 입고 패션쇼 실습을 하는 게 이 과목의 핵심이었다. 정유라 씨는 이 과목을 수강 신청했다. 학교 출석도 하지 않던 정 씨는 평가의 핵심인 옷 제작과 패션쇼 실습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학점은 받을 수 있었다. 정 씨에겐 든든한 조력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해당 수업의 중간 과제물은 제작 과정 등 설명을 덧붙여 자신이 디자인 한 시제품을 제출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유라 씨는 시중에 파는 옷을 입고 찍은 사진을 제출했지만, 이인성 교수는 중간 과제물로 인정했다. 기말 과제물을 제출하지 않자 이번엔 교수가 직접 과제물을 대신 해주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 '망할 새끼들에게 쓰는 수법'…"다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른 과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해도 해도 않되는 망할새끼들에게 쓰는 수법’, ‘웬만하면 비추함’. 일부 10대들이 SNS에서 주로 쓰는 문구가, 정 씨가 대학 교수에게 제출한 수업 과제물에 등장했다. 맞춤법이 틀린 표현들도 과제물엔 수두룩했다. 일반 학생이 이런 과제물을 제출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교수의 지적을 피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유라 씨는 예외였다. 욕설과 비속어로 가득한 이 과제물에 받은 담당 교수는 친절한 과외 선생님처럼 표현 하나하나를 성의를 다해 바로 잡아줬다. 심지어 당초 과제물은 기한 내에 제출되지도 않은 터였다. 정 씨가 교수에게 처음 보낸 메일에 과제물이 첨부가 되어 있지 않았지만, 교수의 반응은 ‘앗! 첨부가 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는 것이었다.
‘K-MOOC 영화스토리텔링의 이해’라는 과목은 정유라 씨가 해외에 있어 기말 시험을 보러 오지 않았지만, 정 씨 이름으로 답안지까지 제출됐다. 누가 작성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정 씨가 아니었던 건 분명했다. 교수들의 이런 지원 덕분인지, 2015년 1학기 0.11점이었던 정유라 씨의 평균 학점은 2016년 1학기에는 2.27점, 2016년 여름 학기에는 3.3점으로 계속 올랐다.
● 지도교수 교체와 정유라를 위한 학칙 개정까지
지난 4월 최순실 씨는 딸 정유라 씨와 함께 이화여대 체육과부 함 모 교수 연구실을 찾았다. 함 교수는 정유라씨의 지도교수였다. 이곳에서 최순실 씨는 "내가 누군지 아냐? 교수 같지도 않은 게 뭐 이런 게 다 있냐?"는 등의 욕설을 쏟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다음날 지도교수는 교체됐다.
자초지종은 이랬다. 2015년 이화여대에 입학한 정유라 씨는 1학기 학사 경고를 받고, 2학기 휴학을 했다. 그리고 2016년 1학기 복학했지만, 학교에 나오지도 않았고, 수업 과제물도 제출하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정 씨의 지도교수인 함 모 교수는 정유라 씨에게 "제적당할 수도 있다"고 경고를 했다. 그러자 정 씨의 어머니 최순실 씨가 나선 것이었다. 이화여대 학칙 제 28조는 ‘신고없이 3주 이상 결석하거나 출석이 고르지 못한 자’는 총장이 제적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도.
최 씨에게서 욕설을 들었던 함 모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 씨를 만나기 전에 학과장으로부터 "정윤회 씨의 부인이 갈테니 잘 해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폭로했다. 최 씨를 만난 이후에는 "지도교수에서 물러나라"는 전화를 학장에게서 받았다고도 덧붙였다.
이런 학칙 개정을 두고 정유라 씨가 소속된 체육과학부는 "대회 참가로만 출석 인정 사유를 제한해야 한다"고 의견을 개진했지만, 대학본부가 훈련까지 해당 조항에 포함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이대 대학본부가 나서서 2016년 1학기 출석을 거의 하지 않아 제적 위기에 놓인 정유라 씨를 구제하기 위한 맞춤형 학칙을 만든 것으로 풀이됐다.
● '왜'가 빠진 교육부의 감사 결과…공은 검찰과 특검으로
지난달 18일, 교육부는 정유라 씨 특혜 제공 의혹을 받았던 이화여대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하며, 입시부정을 주도한 남궁곤 전 입학처장 등 13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과 최순실, 정유라 씨 등 4명은 수사 의뢰했다. 하지만, 왜 이화여대가 조직적으로 정유라 씨에게 특혜를 제공했는지에 대해선 감사 결과를 내놓지 않았다.
왜 이대가 정 씨에게 특혜를 제공했을까. '왜'를 추정할 수 있는 단서는 있다. 정부의 지원, 즉 돈이다. 이대는 올해 교육부 재정지원사업 9개 중 8개에 선정돼 180여억 원을 지원 받았다. 유일하게 선정되지 못한 1개 사업은 이대가 신청 자체를 하지 않았던 사업이다. 이대가 신청하면 100% 선정됐다는 말이다. 특히, 박근혜 정부에서 신설된 6개 사업에 모두 선정됐다. 재정지원사업 8개에 선정된 대학도, 박근혜 정부 아래 신설된 6개 사업에 모두 선정된 대학도 이대가 유일했다.
대학가에선 "교육부의 재정지원사업은 한 개 따내기도 힘든데, 이대가 8개나 사업을 따낸 건 명백한 특혜"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대가 조직적으로 정유라 씨에게 특혜를 제공한 건 "교육부 재정지원사업을 따내기 위해서였다"는 의혹인 것이다. 그 재정지원사업 선정의 주체가 교육부라는 점에서, 교육부 내에 최순실 측 이익을 위해 움직인 사람들이 있는 것이라는 의혹도 커지고 있다. 교육부는 이런 의혹에 대해선 별도 감사를 벌이지 않았고, 이 의혹들은 특별검찰의 수사 영역으로 남게 됐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sbs.co.kr)
박원경 기자 (seagull@sbs.co.kr)
분석: 한창진·장동호
디자인/개발: 임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