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 백인 중심의 문화가 지배적인 노스캐롤라이나 킨스턴 지역에서 열린 트럼프 지지 유세는(26일) 한국 정치 유세만 경험했던 제게는 놀라운 일의 연속이었습니다. 주차장에서부터 거대한 백인들의 물결이 시작됐는데, 길게 늘어선 줄이 유세장 입구부터 1킬로미터 넘게 이어졌습니다. 집회 장소에 들어가려고 줄을 선 사람 중에 흑인이나 히스패닉은 물론 아시아인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일부 백인들은 신기한지 저한테도 "당신도 트럼프 지지자 맞아요?"라고 질문을 할 정도였습니다. 참전용사 모자를 쓴 할아버지들도 많이 보였지만, 의외로 트럼프 지지 T셔츠를 입고, 친구들끼리 온 젊은 백인들도 많이 보였습니다. 아이를 안고 가족끼리 나들이 겸해서 나온 사람들도 곳곳에 있었습니다. 그저 평범한 백인들이 대다수였습니다.
● "워싱턴 관피아, 정피아들은 다 도둑놈들이야"
존 트리벨라(베트남전 참전 용사)
"워싱턴은 로비스트들의 천국이다. 이들은 한때 정치인이나 관료들이었는데 현직에서 물러나면 다 로비스트가 돼 국가 시스템을 주무른다.(한국으로 치면 관피아, 정피아쯤 될 듯합니다.) 이들은 다 도둑놈들이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미국이 제대로 되는 게 없다. 힐러리가 대통령이 되면 이런 시스템이 더 연장될 뿐이다. 힐러리를 막기 위해 나는 트럼프에게 표를 줄 거다."
힐러리가 정말 감옥에 가야한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는 "이메일 유출 사건을 다른 사람이 저질렀다면 당장 감옥에 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트럼프의 거친 입과 여성 비하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것에 대해서는 "문제는 있지만 수십 년 전 일이고, 사적으로 한 얘기쯤은 이해할 수 있는 거 아니냐"는 반응이 돌아왔습니다. 그저 평범한 미국 남부 시골 노인의 이런 반응은 기존 정치 시스템에 대한 증오가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는 증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 프로레슬링 같은 오버액션 가득한 트럼프 유세장
트럼프의 지지연설은 다른 곳에서 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선거 슬로건에 맞게 미국을 다시 잘 살게 만들겠다는 메시지가 이어졌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미국만 잘 살게 해주겠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습니다. 이민자들이 와서 우리 일자리를 뺏어가고 있으니, 불법 이민자를 막기 위해 국경에 벽을 세우고, 난민은 미국에 들어올 생각도 말라는 거침없는 내용이 이어졌습니다. 힐러리에 대해서는 야비할 정도로 원색적인 비난이 이어졌는데, 기존 정치인들에 대한 혐오감을 조장하기 위해 무척이나 애썼습니다. 힐러리로 대표되는 워싱턴의 썩은 정치를 끝장내기 위해 자신이 백악관에 가야한다는 논리였습니다. 언론 탓도 이어졌는데, 수십 미터 거리를 두고 연설을 담고 있는 영상팀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여기서 가장 나쁘고 거짓말만 하는 사람들이 저기 기자들이다"고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왜 언론이 자기를 비판하는지에 대한 자기 성찰은 전혀 없었고, 그저 언론 탓만 하느라 정신없었습니다. 일부에서 트럼프가 선거를 포기한 거 아니냐는 기사도 나오지만, 적어도 현장에서 보기에 트럼프는 자기가 승리한다는 강력한 자기 최면에 걸려 있었고, 지지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소 과장된 트럼프가 말과 행동에 지지자들도 과장된 환호와 행동으로 응답했습니다. 연설 처음부터 끝까지 미국 프로레슬링 WWE 경기장 한 가운데 있는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 남녀노소 외치는 구호 "힐러리를 가둬라(Lock her up!)"
● 증오와 저주의 정치…선거 이후 극복 가능할까?
상대방에 대한 막무가내 비방과 근거 없는 흑색선전은 사실 한국 정치를 비판하면서 등장하는 단골 메뉴였습니다. 하지만 민주주의 선배라는 미국에서도 트럼프 등장 이후에는 별반 차이가 없어 보였습니다. 오히려 거침없고 여론의 눈치도 보지 않는 트럼프는 우리나라 막말 정치인들이 울고 갈 정도의 대범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기 지지층을 단결시키기 위해 던진 증오와 저주의 막말은 씨앗이 돼 고스란히 국민들의 마음속에서 자라납니다. 어지럽고 시끄러운 한국 정치만큼이나 미국 정치도 선거 이후에도 갈등은 커질 수밖에 없고, 이를 치유하는 건 쉽지 않아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