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가득 찼던 드넓은 호수는 황량한 벌판으로 변했습니다. 저수지 상류 바닥에는 봄부터 시작된 가뭄에 잡초가 허리춤까지 훌쩍 자랐습니다. 풀밭을 지나 들어가니 바짝 타들어간 진흙 밭에서 흙먼지만 날렸습니다. 땅 바닥은 손이 들어갈 만큼 갈라 터졌습니다. 진흙이 품고 있던 물이 증발하면서 땅바닥이 쩍쩍 입을 벌리고 갈증을 호소했습니다.
곳곳에서 민물조개인 귀이빨대칭이의 비명이 들렸습니다. 진흙 틈 속에 갇혀 옴짝달싹 못했습니다. 꺼내보니 꽉 다문 입가에 아주 적은 물기를 머금은 채 하루하루 힘겹게 버티는 상태였습니다. 조개는 입을 다물고 있으면 산 것입니다. 벌써 여러 날 째 비 소식은 없고 강렬한 초가을 햇살은 귀이빨대칭이의 생명수를 빼앗으며 죽음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저수지 물이 남아있는 근처에서는 귀이빨대칭이의 필사적 이동이 목격됐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물 있는 곳까지 가지 못하고 땅에 처박혀 구조의 손길을 기다렸습니다. 일부는 입밖으로 허연 조갯살을 내밀고 죽었습니다. 이미 부패가 진행 중 이거나 속이 텅 빈 채 죽은 것들도 상당수였습니다. 급한 맘에 살아있는 것 들을 진흙 틈에서 꺼내 근처 물속으로 서둘러 던져 줬습니다. 논산 탑정저수지의 상황은 더 심각했습니다. 저수지 진흙바닥에 물기를 찾아 이동 중인 귀이빨대칭이가 널려있었습니다. 갓 태어난 새끼들까지 뙤약볕에 헐떡이는 모습이 더 안타까웠습니다.
말조개와 함께 민물조개 중 몸집이 가장 큰 귀이빨대칭이가 낙동강 유역을 중심으로 서식하고 있다는 사실, 또 금강 유역에서도 살고 있고, 멸종위기종 1급으로 지정된 것 등을 알게 된 것도 이맘때였습니다. 그 뒤 저수지나 강바닥 물이 말라 흙바닥이 갈라터진 곳을 보게 되면 예사롭게 넘기지 않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혹시 귀이빨대칭이가 갇혀있지 않을까 꼼꼼히 살펴봤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안타까운 모습을 3년 만에 또 목격했습니다. 1시간 남짓 짧은 시간이었고, 광활한 저수지중 작은 지역에서 관찰한 것이기는 하지만 폐사하거나 죽어가고 있는 귀이빨 대칭이의 숫자는 100여 마리가 넘었습니다.
봄부터 시작된 가뭄이 가을로 이어지며 대책을 마련하라고 신호를 보냈지만 무시한 겁니다. 당장 물길을 낼 수도 없고, 물을 끌어올 수도 없다고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물이 많이 필요한 농사철이 끝났다고 짐짓 모른 체 해서는 더욱 안 됩니다.이번 기회에 귀이빨대칭이의 서식환경에 다시 한번 눈길을 주고 깊은 관심을 쏟아야 합니다. 민물조개 또한 생태계의 소중한 구성원입니다. 멸종위기종 1급 대우 치고는 너무 야박한 것 같아 귀이빨대칭이에게 너무 미안한 생각만 듭니다.
▶ 최악의 가뭄에 강바닥 '쩍'…제한급수 임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