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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너무 완고한 南…세련되지 못한 北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 무산배경

[취재파일] 너무 완고한 南…세련되지 못한 北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불과 나흘 앞두고 갑자기 행사 연기를 선언했다. 추석 연휴가 끝나지 않은 주말, 아직은 풍성함의 분위기가 넘쳐있어야 할 시기에 사실상 상봉 행사를 무산시킨 것이다.

  북한의 결정은 다소 당혹스러운 것이었지만, 북한의 대남 유화적 태도가 오래가지 않을 것 같다는 최근의 조짐에서 보면 북한의 태도 변화는 어쩌면 예견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북한은 최근 발표된 입장 자료에서 ‘북한의 인내성을 오판하지 말라’(조평통 대변인 담화, 8월 20일)거나 ‘북한의 아량과 인내에도 한계가 있다’(국방위정책국 대변인 담화, 8월 29일)면서, 자신들의 대남 유화적 태도가 변화의 임계점에 이르고 있음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북, 태도 돌변한 이유는?

  북한은 남한에 대한 태도를 왜 이렇게 변화시킨 것일까? 북한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올해초 반미대결전 공세를 접고 5월 들어 대화 국면으로 돌아선 북한은 남북한 관계에서 예전 같지 않은 약한 태도를 보여 왔다. 개성공단 재가동 협상 과정에서 수 차례 자신들의 입장에서 후퇴했을 뿐 아니라,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관광 재개를 연계시키려는 시도가 번번이 우리 측에 의해 제동이 걸렸지만 이렇다할 반발을 하지 못했다. 8월 22일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 접촉을 수용하면서 금강산관광 재개 회담을 (우리측 제안 날짜인 9월 25일보다 앞당겨) 8월말이나 9월초에 하자는 북측의 제안은 우리 측의 선의를 읍소하는 모습으로까지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입장은 너무 완고했다. 그동안의 협상 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회담 장소 하나하나에서부터 북한의 제안을 곧이곧대로 받아주지 않았다. 금강산회담의 경우도 북한이 회담 날짜를 앞당겨달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가 수정 제안한 날짜는 (당초 제안일인 9월 25일보다도 오히려 늦은) 10월 2일이었다. 9월말에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열린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지만, 우리 측의 선의를 바랬던 북측으로서는 완전히 무시를 당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우리 정부가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잡고 원칙론을 성공시키고 있다고 했던 시기, 북한은 ‘남한에 무시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이산가족 상봉 캡쳐


상봉 행사 직전 행사 연기는 어떤 이유로도 납득 안 돼

  하지만, 이런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북한이 행사 나흘 전에 이산가족 상봉을 연기시킨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남한 정부를 신뢰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이산가족 상봉을 연기시키기로 결정했다면 상봉 행사가 본격 궤도에 오르기 전에 결정을 내렸어야 했다. 이산가족들이 북쪽으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 시점에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되면, 우리 정부와 국민들로서는 북한이 대남 메시지를 주고 있다는 이성적 판단을 떠나 감정적 차원의 반감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고령의 이산가족들이 마지막으로 가족을 보려는 소망을 빼앗는 행위는 국민들의 감정선을 건드리는 행위이다. 상봉 행사가 나흘 뒤까지 다가왔다면 남한 정부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일단 이번 행사는 치르고 난 뒤 11월 추가상봉을 협상 카드로 활용해야 했다.

  우리 정부가 금강산회담을 늦추자는 제안에 불만이 가득한 채로 어정쩡하게 시간을 보내다 이산가족 상봉을 허용할 수 없다는 판단을 뒤늦게 내린 것이라면 ‘장고 끝에 악수’를 둔 것으로 밖에 평가할 수 없다. 상봉 행사 직전에 행사를 연기해야 남한 정부가 더욱 아파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남한 정세를 잘못 읽은 것이다. ‘북한은 역시 믿을 수 없는 존재’라는 인상을 주는 상황에선 어떤 정부도 북한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기 어렵다.

급변하는 북한의 정책 결정, 의구심만 키워

  올해초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치닫는 듯 했던 위협 공세와 그 이후 이어진 ‘전에 없던 수준의’ 유화 국면으로의 전환, 그리고 뭔가 적절하지 않은 타이밍에 이뤄지는 이산가족 상봉 연기 선언은 북한의 정책 결정이 상당히 불안정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북한이 앞으로 어떤 정책결정을 할 지 모르지만, 지금처럼 납득이 잘 가지 않는 행위들이 반복될 경우 북한 정권의 미래에 대한 의구심만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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