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 대목에서 아주 상식적인 의문이 하나 생깁니다. 왜 우리처럼 전국민 의료보험이 없을까? 물론 만들면 됩니다. 말은 아주 간단하지만 미국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면 그게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상당수의 미국인들 특히 연방 정부의 권한 확대를 경계하는 보수적인 미국인들은 건강보험이든 뭐든 정부가 국민들에게 의무적으로 돈을 내도록 하는 것은 나쁘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내놓은 미국판 '국민 개보험' 일명 '오바마 케어'에 대해 무려 26개의 주가 위헌 소송을 제기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입니다. 이런 일에 왜 연방정부가 관여하느냐 하는 것이죠?
이 치열한 논란에 미 연방대법원이 어제(29일)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개인들에게 의무적으로 의료보험을 들게 하고 들지 않을 경우 벌금을 매길 수 있도록 한 '오바마 케어'가 합헌이라는 것입니다. 이 법안은 오는 2014년부터 시행됩니다. 이 법안에 따르면 현재 무보험자 가운데 3천8백만명이 의무 의료보험에 가입해야 합니다. 그나마도 부담할 능력이 없는 빈곤층 1600만 명가량은 예외를 인정했습니다. 오바마 케어에 대한 합헌 결정이 나온 뒤 워싱턴 D.C.의 연방 대법원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수많은 오바마 대통령 지지자들이 환호성을 올리며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당초 미국 언론들의 예상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불리한 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습니다. 현재 미 연방대법원의 구성이 5대 4로 보수적 색깔이 강해 강제적인 보험 가입 조항을 위헌으로 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사흘 동안 팽팽한 논쟁이 벌어졌지만 결국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캐스팅 보트를 행사했습니다. 로버트 원장은 보수적인 성향의 인사이지만 이번 사안만큼은 오바마가 옳다고 판단한 듯 합니다. 만약 이 법안이 위헌 판결을 받을 경우 재선 가도에 큰 암초를 만날 뻔 했던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반면, 롬니 후보를 비롯한 공화당 측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오바마 케어' 위헌 판결을 계기로 보수표를 결집해 반격에 나서겠다는 큰 전략의 밑그림을 다시 그려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연방 대법원의 합헌 판결이 나온 직후 롬니는 만약 대통령이 된다면 첫 날 오바마 케어를 폐기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만큼 위기감이 크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이제 미국 대통령 선거도 4달 남짓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길다면 긴 시간이기는 합니다만, 지금으로서는 획기적인 전환점이 없다면 롬니가 오바마를 이기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만약 오바마가 여세를 몰아 재선에 성공한다면 오는 2014년부터는 미국의 의료제도에 큰 변화가 생길 게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