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만 흑두루미 AI감염 잇따라
지난달 13일부터 지난 7일까지 순천에서 발견된 흑두루미 폐사체는 1백44마리다. 24일간 하루 평균 6마리씩 죽고 있다. 하동과 서산, 목포 등 3곳에서도 같은 기간에 흑두루미 7마리가 죽었다.
광주에 있는 국립 야생동물질병관리원에는 인플루엔자 검사를 위해 전국에서 야생조류 폐사체가 밀려들고 있다. 폐사체는 비닐로 밀봉돼 스티로폼 박스에 담겨 택배로 온다. AI 감염을 막기 위해서다. 연구원들은 죽은 새 기도에서 시료를 채취한 뒤 곧바로 AI 검사에 들어간다. H5항원이 검출되면 새들에게 치명적인 고병원성 여부를 밝혀야 하는데 최대 3일 정도 걸린다.
고병원성AI로 확진된 흑두루미는 지난 7일 기준 97마리다. 순천에서 발견된 폐사체가 93마리나 되고, 하동과 서산에서도 각각 3마리, 1마리에 이른다. 나머지 흑두루미는 검사 결과 음성이 6마리이고, 검사 중인 개체 수는 48마리다.
흑두루미 외에 큰고니 21마리, 쇠기러기 4마리, 큰기러기 4마리, 수리부엉이 2마리, 혹고니 3마리, 민물가마우지 2마리, 붉은부리갈매기 2마리, 중대백로 1마리, 흑고니 2마리가 고병원성AI에 감염돼 폐사한 걸로 확인됐다. 흑두루미가 고병원성AI로 국내에서 집단 폐사한 경우는 지난 20년 이후 처음이다. 20년과 21년에는 한 마리도 없었다.
AI변이 11종 출현…멸종위기종 폐사 속출
국립 야생동물질병관리원 김원명 과장은 "올해 유행하고 있는 H5N1 고병원성 바이러스의 경우 작년 이맘때까지 1종이었습니다. 그런데 현재까지 11종으로 아주 다양한 유전형이 발견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김 과장은 11개 변이종 가운데 흑두루미에 치명적인 유전형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연구 작업이 지금 진행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흑두루미의 집단폐사는 일본에서 먼저 시작됐다. 최대 월동지인 가고시마현 이즈미시 등에서 지난달 1일부터 최근까지 1천1백여 마리가 폐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 세계 흑두루미 개체수는 1만6천~1만 8천 마리로 추정된다. 일본에서 나타나고 있는 피해는 전 세계 개체수의 6%나 되는 우려할 만한 상태다.
일본 흑두루미 1천1백여마리 폐사…AI피해 순천만 이동
순천만에서 흑두루미의 피해가 일본보다 훨씬 적은 이유는 서식환경의 차이에 있다. 일본에서 흑두루미의 잠자리는 논에 물을 가둬 만든 무논이지만 순천만은 바닷물이 드나드는 갯벌이다. 일본의 경우 논에 가둔 물이 AI에 오염됐고, 흑두루미들이 잠을 자기 위해 모여들어 물을 먹는 과정에서 AI가 급속히 확산됐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에 반해 순천만 갯벌은 바닷물이 드나들면서 AI 오염원이 씻겨 나가 위험성이 현저히 낮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순천만의 흑두루미 폐사는 일본에 비해 10%가량에 불과하다.
순천만 자연생태관에서 흑두루미 보호업무를 맡고 있는 황선미 주무관은 "일본은 흑두루미가 좋아하는 자연습지가 굉장히 부족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인공적인 잠자리를 만들어서 관리해주는 것에 비해서 순천만 같은 경우에는 천혜의 자연요건을 갖추고 있고 갯벌이 있기 때문에 흑두루미에게 안전한 잠자리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또 주변 농경지에 먹이가 있기 때문에 월동하기에 가장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는 곳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흑두루미가 집단생활을 하는 습성으로 인해 호흡기로도 감염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국립생태원 김영준 동물복지실장은 걱정했다. 흑두루미 폐사가 일본에서는 한 달 이상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숫자는 적어도 당분간 폐사가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
먹이주기 장소 분산, 소독강화해야
흑두루미는 멸종위기종 2급이자 천연기념물 제228호로 지정된 새다. 인플루엔자를 잘 이겨내고 건강하게 겨울을 난 뒤 내년 봄 다시 번식지로 무사히 돌아가길 바란다. 인간뿐 아니라 동물에게도 바이러스의 공격이 더 거세지고 있다. 생태계 순환과 자연 생존질서 중 하나의 과정이라 하기 엔 피해가 너무 혹독하다. 자연환경과 생태계, 야생동물에 대한 인간의 간섭을 줄이라는 신호다.